“이렇게 인천상륙작전 현장인 인천을 다시 찾게 돼서 너무 기쁘고 감개무량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영웅 김순기(90) 옹은 9일 오전 일본인 부인 사치코 여사와 함께 인천 중구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에 헌화한 뒤, 월미도에서 열린 ‘제66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 기념식’ 행사 중 월미산과 주변 해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대규모 위락단지와 공원으로 탈바꿈한 월미도 일대에서 당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부대원들에 대한 기억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김 옹은 “내가 지금 여기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엑스레이(X-ray)’ 첩보작전에 참여했던 부대원들 덕분”이라며 “생사고비를 같이 넘겼던 부하들이 지금은 어디에서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김 옹은 또 인천상륙작전 당시 포화 등으로 갈가리 찢어졌던 월미도 일대의 발전상에 감회가 어린 듯 “인구 15만 명에 불과하고 전쟁으로 형편없이 망가졌던 인천이 지금 인구 300여만 명에 가까운 대도시로 성장한 걸 보고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그도 인천이 고향이다.
김 옹은 1950년 9월 24세의 나이로 해군 첩보부대가 연합군의 인천 상륙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군의 동향을 수집하는 ‘엑스레이’ 작전에 다른 부대원 16명과 함께 참여했다. 그는 당시 정보팀장으로 미군 정보장교 유진 클라크 대위와 함께 배를 타고 해안을 염탐하면서 해안포 등의 위치를 샅샅이 파악했다. 인민군을 격퇴하기 위해 팔미도 등대에 부하 3명과 올라가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김 옹과 부대원들이 이처럼 적진에 침투해 목숨을 걸고 수집한 정보는 모두 맥아더 사령부로 전달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김 옹은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잊어진 존재가 됐다. 그는 1963년 중령으로 예편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은 교토(京都)에서 살고 있다. 우리 정부가 김 옹에게 해준 지원은 충무 무공훈장 2건을 받은 공로로 매달 지급하는 20여만 원이 전부다. 김 옹이 근속 20년이 되기 전에 전역하는 바람에 군인연금은 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아직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남한과 주변 국가를 위협하는 것을 볼 때마다 괘씸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는 김 옹. 그는 “하루빨리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후배들이 나라를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인천 = 이상원 기자 ysw@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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