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독자들이 가장 사랑한 저자와 스테디셀러
지난 10년간 한국 독자들이 가장 사랑한 저자는 누구일까. 예스24에 의뢰해 2006년부터 2016년 8월까지 인문사회와 과학 분야에서 가장 책이 많이 팔린 저자들을 살펴봤다. 인문사회 분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저자는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로 ‘정의 신드롬’을 일으킨 뒤 나오는 신간마다 주목받고 있는 마이클 샌델이 차지했다. 과학 분야에서는 ‘코스모스’로 수십 년간 교양과학 베스트·스테디셀러 넘버1 자리를 지켜온 칼 세이건이다. 샌델이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가장 인기 있는 인문사회 저자로 자리 잡았는지를 분석하고 과학 분야의 인기 필자와 스테디셀러도 살펴봤다.
“정의와 소유에 목말라 있는 한국 사회에 2010년 출판계는 ‘정의’와 ‘무소유’를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며 변화를 강조했다.”
2010년 출판계를 정리하는 한 경제신문의 기사 중 한 대목이다. 무소유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정의는 당연히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가리킨다. 2010년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그해 5월 출간된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인문서로는 드물게 연말까지 60만 부 이상 판매됐고, 2014년 말 출판사를 갈아타고서도 여전히 독자들의 낙점을 받으면서 누적 판매 200만 부를 넘어섰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인문사회 분야 부동의 1위를 차지할 만한 수치인 셈이다.
2010년 당시 ‘정의란 무엇인가’는 20∼30대 여성 독자층까지 흡수했는데,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문서에 다소 무관심할 것 같은 이 독자층을 껴안았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한국 사회가 ‘정의’에 목말라 있었다는 방증이다. 마침 타이밍도 절묘했다. 당시 대통령이 국정 화두로 ‘공정사회’를 야심 차게 내걸었지만, 정권의 투명성은 이미 바닥을 친 상태였다. 한때의 인기라면 훨씬 좋았겠지만, 지금까지 ‘정의란 무엇인가’의 판매는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정의를 갈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치는 갈 곳 모른 채 이전투구만 일삼고,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모순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조선’ 등의 신조어가 나오는 이유는 정의 자체가 희미해져 가는 우리 시대의 반영인 셈이다. 독자들은 속절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정의를 책에서라도, 특히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찾아보고 싶은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눈여겨볼 만한 저자는 장 지글러다. 같은 기간 예스24 인문사회 분야에서 다섯 번째 자리를 차지한 지글러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탐욕의 시대’ ‘빼앗긴 대지의 꿈’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왜 검은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인간의 길을 가다’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전 세계적인 화두인 불평등을 제기한다. 단순한 문제 제기뿐 아니라 실천적 대안들을 내놓음으로써 ‘정의’가 우리 시대의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 이전에도 샌델의 저서는 이미 국내에 출간된 상태였다. 2008년 ‘공동체주의와 공공성’이 출간됐지만 지나치게(?) 학술적인 내용 탓에 독자들의 뇌리에 각인되지는 않았다. 물론 ‘정의란 무엇인가’도 녹록한 책은 아니다. 정의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정치사회적, 즉 인문적 지식과 소양이 필요한데 ‘정의란 무엇인가’가 바로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인기에 힘입어 샌델의 저서는 이후 여러 권이 동시다발적으로 출간됐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간된 2010년에만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와 ‘왜 도덕인가’가 선을 보였고 이후 ‘정의의 한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민주주의의 불만’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등의 출간으로 이어졌다. 비판적 견지에서 보자면 ‘정의란 무엇인가’의 인기에 편승하는 출판 행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한국 사회의 정의를 갈망하는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행위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인기를 바라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런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향한 독자들의 사랑이 존 롤즈의 ‘정의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를테면 지적 자장이 넓어지지 않는 한국적 풍토 말이다. 샌델은 롤즈의 ‘정의론’을 꼼꼼하게 독해함으로써 ‘좋음(good)과 옳음(right)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정치철학자다. 그런 점에서 ‘정의론’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인기와 함께 널리 회자됐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단편적인 언급만 있었을 뿐, 여전히 ‘정의론’은 관심 밖이다. 이제라도 관심이 있다면 최근 출간된 롤즈의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눈여겨볼 만하다. 롤즈가 2002년 타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작업한 책이면서, ‘정의론’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공정으로서의 정의’다. 롤즈가 주장한 정의론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공정으로서의 정의’인데, 그 핵심적인 내용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더 많은 독자의 손에 들려지기를 바란다. 더불어 읽히기를 기대한다. 한 사람의 독자가 책을 읽고 그것을 삶으로 살아낸다면,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 즉 민심은 도태된 사회를 바꿀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치든 경제든, 어떤 분야든 말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한 권의 책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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