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강동구 성내동 농협 서울지역본부 주차장에 마련된 직거래 장터를 찾은 주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강동구 성내동 농협 서울지역본부 주차장에 마련된 직거래 장터를 찾은 주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 서울 성내동 농협 직거래장터 르포

52개 농가 참여 … 금·토 열려
16년동안 113억 원어치 판매
농민 “단골 확보 등 판로 개척
임대·전기료도 안들어 큰 도움”

고객 “친환경 농산물 많고 저렴
맛있고 믿을 수 있어 늘 찾게돼”


추석을 앞둔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 성내동 농협 서울지역본부 주차장에 마련된 직거래 장터. 장터가 골목이 아닌 대로변 옆에 위치해 접근성 자체가 우선 놀라웠다. 장터에 들어서자 강렬한 젓갈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오랜만에 엿장수의 요란한 가위 소리도 들리고 오래된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전통가요도 명절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갑자기 ‘펑’하며 터지는 뻥튀기 기계도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시골 명절 대목 장터 같은 왁자지껄함을 본다는 자체로도 기분이 좋은 곳이었다. 접이식 천막 50동 곳곳에서는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사는 사람들의 흥정이 한창이었다. “한번 잡숴 봐요”라며 사과와 배 등 과일을 빠른 손놀림으로 깎아내는 농민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곳에서 직거래 장터가 열린 지 벌써 16년째. 경기 구리에서 먹골배를 가지고 올라온 정효숙 씨는 “배 한 상자 가격이 2만5000원으로 포장만 번지르르한 백화점의 3만5000원짜리 상자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올해는 사상 유례없는 불볕더위 때문에 과수 농사를 짓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충남 연기군 조치원에서 배와 복숭아 농사를 짓는 김성단(여·63) 씨는 “추석 배는 큰 게 맛있는데 지난해 추석 배가 한 30% 정도 됐다면 올해는 5%밖에 안 된다”고 했다.

강신덕(여·58) 씨는 “올해 봄부터 ‘깜약’이라는 배 병충해 때문에 재배하는 데 애를 먹었다”며 “그런데도 화학비료를 안 써서 친환경적이고 맛은 좋다”고 자랑했다. 올해는 불볕더위에 비가 안 와서 배는 당도가 높은데, 복숭아는 당도가 높지 않다고 했다.

예산에서 사과(홍로)를 판매하기 위해 올라온 한 농부는 “올해는 폭염에 비도 안 와서 과일 크기가 작다. 예년에 1000만 원 매출을 올렸다면 올해는 700만 원밖에 안 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역시 경북 예천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박세진 씨는 이곳 장터 고객과 노래교실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농촌 과일 따기 체험행사 등을 마련해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들이 장터에서 물건을 사간 뒤 신뢰가 쌓이면서 다양한 형태로 판매 활로가 열린 사례다.

시민들이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착한 가격’도 있지만 믿고 살 수 있다는 신뢰가 한몫하고 있었다. 서울 잠실에 사는 주부 곽은경 씨는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예천 사과를 15상자 구입했다.

곽 씨는 “사과도 맛있고 믿을 수 있어 해마다 명절이면 여기에서 과일을 구매한다”고 말했다. 카트에 4세짜리 아이를 태우고 잡곡 등을 구입한 주부 최경내 씨는 “아이들에게 믿고 먹일 수 있는 잣 등 친환경 농산물이 많아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박병필 농협 서울지역본부 소비지판매단장은 “과수 제품의 경우 서울시에서 분기당 1회 잔류 농약 검사를 하고 농협 자체 식품연구소에서도 나와 과일들을 수거해 잔류 농약 검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검사를 거치고 나온 제품이어서 소비자들이 믿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농협은 이곳 직거래 장터에 크게 개입하지 않고 자치회가 철저한 규율 아래 스스로 운영해 나가고 있다. 직거래 장터 농민회장인 임재완(62) 씨는 “임대료, 전기료, 주차료 등 돈 한 푼 받지 않고 이렇게 물건을 팔게 해준 농협이 아주 고맙다”면서 “이 같은 장터가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거래 장터에 나오는 농민들의 하루는 무척 고단하다. 산지에서 보통 오전 3∼4시에 농산물을 싣고 출발한다. 농협이 마련해준 쉴 공간이나 인근 찜질방에서 자고 다음 날 또 장터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잠시 쉬는 동안에는 아르바이트 판매원이나 친척의 도움을 받아 물건을 판다.

올해는 벼농사가 풍년이다 보니 장터 입구에서 3만 원 이상 구입한 고객들에게 1㎏ 이상 쌀을 사은품으로 지급하는 이채로운 풍경도 볼 수 있었다.

농협 서울지역본부 직거래 장터는 매주 금·토요일에 열린다. 판매장 면적은 991㎡ 규모로 농업인 32명, 농·축협 7개소, 영농조합·대리점 8개소 등 총 52개 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01년 4월 금요일 정기 장터로 문을 열어 지난해에는 모두 98회 열렸고, 113억3500만 원어치의 농산물이 팔렸다. 하루 평균 1억3100만 원이 팔린 셈이다. 보통 겨울철인 12월 둘째 주에는 문을 닫고 이듬해 3월 초에 다시 문을 연다. 2006년에는 농림부 직거래 사업평가에서 최우수 장터로 선정되기도 했다.

농협은 구청과 법원 등 외부 직거래 장터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서울고등법원, 강남구청,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서울동부지법, 육사 아파트 등에서 32억9200만 원의 농산물이 팔렸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
방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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