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운이 완연한 19일 오후 주민과 아이들이 서울 양천구 신월3동 경인어린이공원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노란 동그라미 안의 건물이 지킴마루. 주취자로 시끄럽던 공원은 주민들이 지킴마루에서 자발적인 보호관찰 활동을 하면서 안전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가을 기운이 완연한 19일 오후 주민과 아이들이 서울 양천구 신월3동 경인어린이공원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노란 동그라미 안의 건물이 지킴마루. 주취자로 시끄럽던 공원은 주민들이 지킴마루에서 자발적인 보호관찰 활동을 하면서 안전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 양천구 경인어린이공원 ‘지킴마루’

다세대주택 아이들의 공간이
조명 어둡고 주취자들이 점령
1년 전만해도 동네 ‘위험지역’

주민들 스스로 순번 정해 순찰
컨테이너에 ‘지킴마루’ 설치
지금은 자원봉사센터로 발전


늦은 저녁, 서울 양천구 신월3동의 구불구불 경사진 골목을 오르다 보니 멀리서 경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조금 더 오르니 길 오른쪽으로 작은 공원이 보인다. 작은 공원의 미끄럼틀에는 동네 아이 대여섯 명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고 그 뒤로 불을 환하게 밝힌 노란색 컨테이너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년 전 이 무렵에 양천구 신월3동의 주민과 전문가들이 함께한 워크숍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 워크숍은 마을의 불안한 환경요소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는데, 주민들은 좁고 복잡한 골목길과 어두운 조명 그리고 지저분한 환경을 위험요소로 꼽았다. 그중에서도 동네 한복판에 있는 경인어린이공원의 주취자(술에 취한 사람)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꼽았다.

다세대주택이 많은 이 동네에서 어린이공원은 아이들이 집 밖에서 놀 수 있는 유일한 열린 공간이었는데 술 취한 어른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어린아이가 놀기에 안전하지 않았다. 실제로 주취자들이 어린이나 주민에게 직접 위해를 가한 적은 없지만 술에 취해 용변을 아무 데나 봐 참지 못할 냄새를 풍기거나 술에 취한 사람끼리 자주 싸움을 벌이곤 해서 언제라도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주민들에게 있었다. 더구나 주취자 중에는 동네 사람이 아닌 낯선 사람도 있어서 이들에 대한 불안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동안 주민은 이들을 설득도 해보고 쫓아내기도 해봤지만 잠시뿐이었고, 힘이 부친 주민은 반쯤 포기한 상태로 지내왔다고 한다. 워크숍에 참석한 주민들은 안전을 위해 공원에 조명을 밝히고 CCTV도 더 설치하고 주취자의 접근을 막는 경찰의 치안활동과 순찰을 더 강화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차원에서 워크숍을 마치게 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경인어린이공원이 새 단장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해서 일과를 마치고 늦은 저녁 시간에 이곳을 찾게 됐다.

1년 전 워크숍 자료를 통해 보았던 당시의 부정적인 공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말끔하게 단장된 공원의 바닥은 작은 언덕으로 만들어져서 아이들이 오르내리며 뜀박질을 하고 있었고 공원 가장자리 꽃밭 사이에 조성된 산책로에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음을 떼는 아기도 보였다. 재잘거리는 소녀들 뒤로 지킴마루라는 명패가 붙은 노란 컨테이너 안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마주앉아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행복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러한 행복한 변화에는 보이지 않는 주민의 현명한 해결책이 숨어 있었다. 주민은 시에서 지원하는 CCTV와 가로등을 공원에 설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공간을 주민 스스로가 지켜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지킴마루’이다. 주민들은 오후 8시에서 10시까지 스스로 순번을 정해 이곳에 나와 저녁 늦게 이곳을 찾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보호관찰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나와 놀 수 있게 되자 어르신들도 손자 손녀와 함께 이곳을 찾게 됐다. 그러자 그동안 골칫거리였던 주취자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지킴마루는 단순히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고 어린이공원을 청소하는 일만 하는 곳은 아니다. 주민의 자원봉사센터로 거동이 불편한 동네 어르신에게 노인복지관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배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킴마루는 컨테이너를 활용한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공간이지만 그 위용은 어느 화려한 건물에 못지않다. 1년 전 자신과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했던 주민이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동네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니 공원을 밝히고 있는 지킴마루의 빛이 더 밝고 따스한 미래를 비추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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