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랑포 제1땅굴 관리·경계하다
37년전 서부군사분계선 넘어와
당시만해도 ‘귀순용사’로 환대
北 암살지령 내려…그림자경호
소개팅서 만난 서울여자와 결혼
남한‘제2 조국’ 아닌 그냥 조국
목숨 내놔야한다면 안망설일것
USB·삐라 보내야 北정권 타격
北당국 ‘심리전’ 두려워하는데
전단 반대하는 정치권 이해안가
金, 성과 과시하고픈 조급증탓
金체제 1~2년내 정착 못하면
核통한 ‘통일대전’ 도발할수도
인터뷰가 끝나고 배웅을 했다. 그는 헤어지는 순간, 못다 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다시 누군가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면, 그게 내가 돼도 추호도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눈가에는 북한과 한국, 두 조국에서 살아야 했던 회한이 얼핏 스쳐 갔다. 북녘 수용소에서 차갑게 숨져간 아버지와 동생들의 얼굴도 떠올리는 듯했다. 총총히 떠나는 뒷모습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안찬일(62) 세계북한연구센터 회장은 탈북자다. 북한 정찰총국이 암살지령을 내린 8인의 주요 탈북자 중 한 명이다. 외출 시에는 한국 정부의 경호원이 그림자처럼 동행한다. 1997년 피살당한 ‘제2의 이한영’(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다. 추석 연휴 전인 지난 12일 이뤄진 만남도 안전상 문화일보 5층 편집국 인터뷰실에서 이뤄졌다.
서부 군사분계선(MDL) 철책을 넘은 지도 37년이 흘렀다. 1979년 7월 27일 한창 젊었던 25세 나이였다. 북한 인민군 2군단 소속 부소대장, 계급은 상사였다. 그는 경기 연천군과 파주시 문산을 마주 보는 휴전선 전방부대에서 근무했다. 임무는 고랑포 제1땅굴 관리 및 경계였다.
1970년대 말 김일성은 대남기습 공격을 노리고 전방 3개 군단에 각각 4개의 남침용 땅굴을 파라고 지시했다. 안 회장은 “낮에 공병들이 땅굴을 파면 시멘트를 날라다 주고, 밤에는 땅굴 초소경비를 지휘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적화통일을 위해서 땅굴 구축작업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수시로 직접 땅굴을 점검했다. 오 부장이 뜨면 별이 3개였던 이두익 2군단장도 부들부들 떨었다. 지적사항이 나오면 목이 한숨에 날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12개의 땅굴을 팠는데 1994년 고랑포 1땅굴을 포함한 5개가 발견됐으니 7개가 남아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물론 땅굴 공사가 모두 성공했을 경우다. 서울 변두리까지 도달하는 북한의 비밀 땅굴이 있다는 루머가 지금도 돌지만 모두 근거 없는 헛소문이다. 그는 “땅굴은 4∼7㎞ 정도밖에 파지 못한다”며 살짝 웃었다.
탈북자 3만 명 시대인 지금은 인민군 출신들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귀순용사’로 커다란 환대를 받았다. 정부에서 서울 아파트 가격 두 채에 해당하는 정착금을 지원했을 정도였다. 귀순 동기가 궁금했다. 그는 9년 동안 군복무를 했다.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까지 진격한 인민군 참전용사로 출신 성분도 좋았다. 그는 김일성 정치대학에 들어가 정치장교가 되기를 원했지만 북한 당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김일성-김정은 세습체제의 비합리성도 지적했다. A5 용지 다섯 장 분량의 편지를 북한 당국 앞으로 보내고 탈북을 결행했다. ‘가족들의 신변 걱정은 없었냐’고 물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았다”고 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최근 읽은 안 회장의 1997년 저작 ‘주체사상의 종언’ 얘기를 꺼냈다. 안 회장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주체사상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남한의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존재를 북한은 유교풍토에 기반한 최고정점인 어버이 수령으로 대치시켰다. 그는 서문에서 “북한 전문가들을 북한을 가장 전문적으로 틀리게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혹평이 있지만 북한에 무슨 올바른 통치구조와 통치이데올로기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라고 적었다. 또 “북녘땅 어디엔가 나의 혈육이 살아 있다면 오늘 (출고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언급했다. 귀순 이후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에는 ‘공화국은 군대가 지키고, 군대는 인민이 지킨다’는 말이 돈다. 사흘을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지 않을 수 없다는 속담이 있듯 북한에서는 군대가 마을에 나타나면 집으로 달려가 식량과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인민군이 주둔하면, 백리 반경에는 가축과 처녀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비아냥도 있다. 과거의 김일성-김정일시대와 달리 김정은 체제는 절대충성심이 떨어진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 회장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도로와 항만, 댐 건설에 노동집약적으로 군인들을 부리고, 핵폭탄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9월 9일 5차 핵실험으로 화제가 돌아갔다. 안 회장은 한반도 정세가 앞으로 수년 안에 커다란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김정은 체제가 앞으로 1∼2년 안에 정착되면 핵미사일 카드를 꺼내지는 않겠지만, 체제 불안이 극대화되면 핵미사일 카드를 써서 통일대전의 도발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북한의 잦은 숙청과 연이은 핵실험, 미사일 발사 도발은 그만큼 가변성이 높은 작금의 북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무모한 도발로 나올 불안정한 정서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어려서 스위스 유학을 갔는데 사실은 도피성 유학이었다”며 “3형제 중에서 가장 어렸고 처음에 후계구도 반열에 오르지 못한 그가 권력을 장악하리라고 확실하게 예상한 사람은 북한 내부에서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빨치산 1세대와 후대에게 확실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을 갖고 있다는 진단도 곁들였다. 안 회장은 “김 위원장이 ‘당신들처럼 북한에 살면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외국을 떠돌았지만, 선대도 못한 조국통일의 대업을 내가 완성한 핵무기로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의 마음속에는 항상 도피의식과 분노의식이 잠재해 있다고 바라봤다. 김정은의 불안한 정서가 서둘러 핵실험을 감행하게 만들고 있고, 제대로 조절되지 못한 충동으로 한반도가 전면전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는 추론이다.
핵탄두 실전배치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핵탄두를 노동당 군수 공업부에서 미사일 전략 사령부로 이관했는지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김 위원장은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 이전에 핵탄두 실전배치를 완료하는 속도전으로 나올 것”이라고 관측했다. 5차 핵실험에서 사용된 핵탄두는 소형경량화된 500㎏ 정도이고, 수소폭탄일 가능성도 있다고 파악했다. 북한 4차 핵실험을 핵증폭 분열탄이라고 한다면 다음 단계는 수소폭탄 실험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스커드 B와 C, 노동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려면 500㎏이 최적화된 중량이라고 평가했다.
남한 사회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그는 “북한보다 남한에서 더 많이 살았으니까 이제는 알고 있지만, 처음에는 6·25전쟁을 북한이 일으켰다는 소리를 듣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받아왔던 학습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북한의 세뇌교육 결과였다. 북한은 지금도 ‘미국이 와서 우리를 모두 몰살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살길이 열린다’고 교육한다. 외부와 차단된 폐쇄사회인 북한체제 유지의 비결인 셈이다. 안 회장에게 대한민국은 제2의 조국도 아닌 이제는 그냥 조국이다. 그의 두 아들은 지금 미시간 주립대에 다닌다. 현대건설 해외인력 관리부 근무 중 7번째 소개팅에서 만난 ‘서울 여자’와 결혼했다. 군복무만 해서 연애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는 요즘 신문 기고와 방송 출연을 통해 심리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안 회장은 “북한 당국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심리전”이라며 “DVD와 USB, 전단(삐라) 등을 북한 내부사회로 유입시켜 북한 주민들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북한에 전단과 1달러와 5달러, 10달러 지폐가 담긴 풍선조차 띄워 보내지 못하게 하는 한국 정부와 정치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에서 보통 교장선생님 한 달 월급이 500원인데 1달러 한 장만 주워도 한 달 월급이라는 것이다. 20달러를 주우면 1년 연봉을 훨씬 넘게 벌게 된다. 안 회장은 “북한에서는 바람이 불면 주민들이 남쪽 하늘을 쳐다본다”며 “함께 들어있는 전단의 내용도 읽게 돼 북한체제를 흔들 수 있는 커다란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아직도 햇볕정책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며 “일각에서는 ‘풍선 보내고 전단 뿌리는 행위를 ‘전쟁을 하자는 거냐’고 바라보고 있는데 현실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의 대북제재는 ‘교장선생님 훈시’일 뿐 김정은 정권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고향인 평안북도 신의주 얘기를 꺼내자 그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다시 ‘고향 집 생각’을 묻자 “가족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안 회장은 2남 4녀 중 장남이었다. 가족들이 고초를 겪을 것이라는 짐작은 했지만 귀순 바로 이튿날 아버지와 남동생 1명, 여동생 3명이 모두 강제수용소로 끌려갈지는 몰랐다. 출가한 누나만이 화를 면했다.
그는 “화교를 통한 브로커들이 연결해 줘서 2000년대 초반 신의주에서 살고 있는 누나와 간신히 통화를 했다”며 “누나에게서 가족들이 요덕수용소에서 맞아서 죽고 얼어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뭐 그렇게 거기서 살아 나온다는 게 쉽지가 않다”고 말하는 목소리 끝자락에는 들릴 듯 말 듯 한숨이 묻어났다.
인터뷰 = 이제교 차장 (정치부) jk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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