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에서 매년 열리는 성지순례 행사인 하지 모습. 조사결과 국경을 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하지 체험은 종교적으로 관용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종교 갈등에서 만남과 교류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이슬람교에서 매년 열리는 성지순례 행사인 하지 모습. 조사결과 국경을 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하지 체험은 종교적으로 관용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종교 갈등에서 만남과 교류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 아라 노렌자얀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영사

저자는 레바논 출신의 사회심리학자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주도권 쟁탈로 1970년대 수만 명이 희생된 레바논 내전을 지켜본 저자는 종교와 사회심리 연구에 열중해왔다. 이 책은 많은 직접 조사와 기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종교의 발달과정, 사회 형성과 연관성 등에 대해 다룬다. 근래 이슬람국가(IS)테러 등 지구촌의 현안을 종교적으로 보는 시각에도 시사점을 준다.

이 책의 키워드는 ‘초자연적 감시자’로서의 신이다. ‘사람은 들키지만 않으면 악마도 된다’는 말처럼, 거대한 초자연적인 신이 인간을 도덕적으로 감시한다는 믿음이 인류 집단의 협력과 신뢰, 질서를 가능하게 했다. 흩어져 수렵채집을 하던 인류가 혈연관계를 넘어 낯선 사람들과 거대 집단을 결속할 수 있었던 구심점이 종교였으며, 집단이 커지는 것과 함께 신도 거대해졌다. ‘거대한 신’-‘거대집단’이 공진화(共進化)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적 결속은 그것을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집단과의 갈등을 부추긴다는 모순이 있다. 거대한 신을 섬기는 종교들은 “소방관인 동시에 방화범”인 것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종교적 갈등은 내가 겪어봐서 잘 안다”며 시작하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종교분쟁에 대해 다룬 책의 9장이다. ‘과연 인류의 폭력적 갈등을 유발하는 데 종교는 얼마나 기여했을까’라고 근본 질문부터 던진다. 급진적 이슬람교를 21세기의 ‘문제적 종교’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1000년 전에는 그리스도교가 훨씬 급진적이었으며, 이슬람교가 지배하던 스페인은 많은 종교가 공존하는 다문화 중심지로서 중세 그리스도교 제국보다 훨씬 관용적이었다. 또 역사적으로 발생한 1800여 건의 갈등사례를 보면 종교가 갈등 요인으로 작용한 사례는 전체의 10%가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자살테러 등 현재 이슬람의 폭력적 양상은 부인할 수 없다. 저자의 결론부터 말하면, 종교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해소의 잠재력도 지녔다는 점을 주시해야 하며, 마치 종교가 손상돼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가치를 가진 것으로 여기면서 갈등상황에서 타협의 여지를 없애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이슬람교 성지순례 행사(하지)에 참석한 무슬림들은 참석을 못 한 무슬림이나 무슬림이 아닌 사람에 비해 다른 민족·종교집단과의 평등, 화합, 평화 등에 대해 지지하는 태도가 증가했다. 이는 민족이라는 경계를 초월하는 ‘국제적’ 행사인 하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폭넓게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종교적 체험은 도덕의 테두리를 확장한다. 또 각기 지역의 공동예배에 참석하는 무슬림보다 개인적으로 기도에 열중하는 무슬림이 더 관용적인 자세를 갖는다는 조사도 있다. 신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 결속에 문제가 있다는 시사다. 저자는 종교들이 이 같은 갈등을 완화하는 요소들을 재구성하면 적개심을 우호적 태도로 바꿀, 그동안 간과했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한국이 포함된 흥미로운 조사가 책에 들어있다. 33개국을 대상으로 각 나라의 ‘긴장도(緊張度)’를 비교했다. 분쟁을 겪은 터키, 한국과 같은 나라는 긴장도가 매우 높았지만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같은 나라는 ‘이완도(弛緩度)’가 높았다. 긴장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종교적 성향이 강했다. 한국에 열성 종교인이나 신앙인이 많은 이유를 말해준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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