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희 / 서초구청장

진주에서 향기가 난다면 어떤 향일까. 어느 시인은 아카시아 향일 거라고 했지만 나는 진한 커피 향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8월 서초구청 로비에 문을 연 발달장애인 카페가 가져다준 생각이다. 커피와 진주는 고통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서 만난다. 진주는 고통으로 빚어낸 보석이다. 이물질을 품은 조개가 오랜 시간 아픔을 참아낸 산물이 진주다. 커피도 긴 고통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커피나무의 열매를 말려 볶은 뒤 가루를 내고, 뜨거운 물로 우려내야 비로소 한 잔의 커피가 탄생한다. 쓰고도 향긋한 커피 향은 커피 열매가 겪은 긴 고통의 산물이다.

그런데 내가 발달장애인 카페를 보며 진주를 떠올린 것은 커피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이름으로 박진주(朴眞珠), 바로 펄 벅 여사가 생각난 까닭이다. 펄 벅의 대표작 ‘대지’에는 비밀 하나가 감춰져 있다. 소설의 주인공 왕룽의 큰 딸은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정신지체아이다. 그 딸이 펄 벅의 발달장애 딸을 그린 것임은 나중에 그녀의 체험집 ‘자라지 않는 아이’를 읽고서야 알았다. 펄 벅은 장애 아이를 키우는 고통을 이렇게 적고 있다.

“세상에는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없는 슬픔은 그저 껴안고 살아야 한다. 그 슬픔은 삶을 바꾸어 놓으며, 슬픔 자체가 삶이 된다.” 슬픔은 펄 벅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자라지 않는 아이’인 딸을 키우기 위해 그는 돈을 벌어야 했고, 글을 써야 했다. 펄 벅은 50여 년 동안 80여 권의 책을 냈다. “내가 죽고 나면 이 아이는…” 하는 걱정이 그녀가 펜을 꼭 붙든 이유인 것이다. 훗날 펄 벅은 이렇게 술회한다.

“그 애가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면 나는 아무것도 못 썼을 것이다. 또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의 작가, 그리고 고아와 장애아를 돌본 위대한 사랑의 실천가 펄 벅은 그렇게 탄생했다. 고통이 그를 그의 이름처럼 진주로 빚어낸 것이다.

우리 서초구의 발달장애인은 1000명 가까이 된다. 서초라는 ‘대지’에 1000개의 진주가 숨 쉬고 있는 셈이다. 펄 벅이 그랬듯이 엄마들의 소원은 ‘자식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것’이다. 그런 간절한 엄마의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발달장애인 카페다. 그들이 ‘내 일(work)’을 갖게 해 내일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구청 로비의 발달장애 친구들이 일하는 카페를 지날 때마다 나는 진주의 향기를 맡는다. 그 향기는 쓰지만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귀하고 향긋하다. 펄 벅이, 아니 문학이 내게 가르쳐준 고난의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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