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직업갖고 당당해도
이리저리 치여 고단한 일상
“내 얘기같아” 시청자 공감

백마탄 왕자 사태해결 ‘눈살’


요즘 두 여성이 대중의 공감을 사고 있다. 한 명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으나 기상캐스터가 된 후 을(乙)의 삶을 살고 있는 표나리(SBS ‘질투의 화신’), 또 한 명은 직업은 가졌으나 노량진 고시생들과 다를 바 없는 고단한 일상에 찌든 학원 강사 박하나(tvN ‘혼술남녀’·오른쪽 사진)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단짠녀(달콤하지만 짠한 여자)’다. 그 시작은 지난 여름 방송돼 2030 여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tvN ‘또 오해영’의 흔하고 평범한 여자 오해영(왼쪽)이라 할 수 있다.

씩씩하게 세파를 헤쳐가며 연애도 쉬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동시에, 발버둥치는 그들의 인생사에 짠내가 난다. 그리고 TV를 통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마음도 괜히 짠하다. 그래서 단짠녀다.

표나리는 진행 실력보다는 외모가 부각되는 의상을 입었을 때 더 좋은 반응을 얻고, 방송국 내 온갖 잔심부름도 도맡아한다. 비정규직을 뜻하는 빨간색 출입증 끈이 끊어졌을 때, 좋아하는 남성이 무심히 건네는 파란색 끈, 즉 정규직의 상징을 거부하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박하나의 별명은 ‘노그래’다. ‘노량진 장그래’(웹툰 ‘미생’의 비정규직 사원의 이름)의 줄임말이다. 자신이 다니던 학원이 문을 닫으면서 고향 선배의 추천으로 노량진 학원가에 발을 디디지만 내로라하는 기존 강사진 앞에 주눅들기 일쑤다. 국어강사인 그는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주제 파악을 못 한다”는 남자 주인공 진정석(하석진)의 뼈아픈 일침에 “앞으로 주제 파악 잘하겠다”고 꼬리를 내리고 만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혼술(혼자 마시는 술)로 마음을 달랜다.

단짠녀는 오포족(族)이나 경단녀(경력단절녀)와는 다른 개념이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수 있는 번듯한 직업을 갖고, 연애도 한다. 그러나 조직 안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적당히 비굴해진다. 10년차 직장인 김선영(여·33) 씨는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냥 ‘내 얘기’ 같다”며 “예전에도, 지금도 사회 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많은 애환을 갖고 있는데 그걸 요즘은 ‘단짠녀’라 부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가 단짠녀들이 위기를 극복해가는 방법을 천편일률적으로 그리는 것에는 반기를 드는 시청자들이 있다. 그들 곁에는 항상 일솜씨가 뛰어나거나 돈이 많은 남자 주인공이 있다. 표나리는 ‘잘나가는’ 기자와 재벌 2세의 구애를 동시에 받는다. 박하나 곁에서는 1000명이 넘는 수강생의 추종을 받는 베테랑 강사가 은근히 그를 챙긴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로맨틱 코미디의 뻔한 공식이라고 하지만 매번 현대판 ‘백마 탄 왕자님’이 사태 해결의 키워드로 등장하는 것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김영섭 SBS 드라마본부장은 “요즘은 여성 시청자들이 TV 리모컨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드라마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며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적절한 수준의 판타지를 가미해 대리만족을 줘야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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