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활성화’(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취소하자는 얘기가 있었어요. 아마 이 같은 논의가 본격화하면 ‘유기장’에 대한 문화재 지정도 위험해요. 동대문이건, 남대문이건 우리 말고도 여러 공방에서 만든 제품이 넘쳐요. 그러나 요즘 시중의 유기는 대부분 기계화된 설비로 만들어진 것들이죠. 말이 이수자지 전통기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곳도 드물고요. 이런 상태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해제하면 전통기법은 아예 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난 2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이봉주(90) 장인(중요무형문화재 77호 유기장 명예보유자)은 지난 6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이수자가 수백 명에 달하는 인기 종목은 인간문화재 지정 해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에 대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관에서는 6일부터 ‘공예공방/공예가 되기까지’ 전을 통해 이봉주 장인의 방짜유기 좌종 17점을 전시중이다. 관람객들이 직접 종을 쳐볼 수도 있는데 메질(망치질)한 흔적은 투박하지만 좌종에선 청명하면서 깊은 울림이 전해진다.
이봉주 장인은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유기장이다. 그는 흔히 놋그릇으로 불리는 방짜유기의 명산지 평안북도 정주군 납청(納淸)마을의 인근(발산부락)에서 태어난 덕분에 1948년 월남 후 서울에 내려와 있던 납청마을의 장인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작업 도중 쇳조각이 눈에 튀어 한쪽 눈을 잃었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어 급기야 1983년도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으로도 지정됐다.
“유기 생산지로는 경기 안성도 유명하지만 수저 같은 소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틀에 부어만드는 주물 유기지요. 납청에서는 유기를 ‘양대’(良大·크고 좋은 그릇이란 뜻)라고 부르며 순수구리 78%, 순수 석(錫·주석) 22%의 합금 비율을 정확히 지켜서 메로 두드리는 방짜(‘두드리다’의 순우리말) 기법으로 만듭니다. 이 같은 전통기법은 중요무형문화재의 하나로 반드시 전승 보존돼야 합니다.”
이날 작품이 전시된 서울관에는 아들 이형근(59) 씨, 손자 이지호(30) 씨도 함께 찾았다. 어려서부터 부친의 방짜유기 공방 언저리에서 자란 이형근 씨는 자연스럽게 가업을 이어 지난 201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보유자가 됐으며, 이지호 씨도 지난해 3년 동안 다녔던 은행을 떠나 방짜유기 전수생이 됐다.
방짜유기는 용해를 시작으로 넓게펴기(네핌질), 우그리기(우김질), 떼어내기(냄질), 당기며 쳐서 늘이기(닥침질), 다듬기(제질) 및 담금질, 변형 바로잡기(벼름질)와 깎아내기(가질)의 순서를 따른다. 4∼5명, 많게는 10여 명이 한 조로 작업한다.
특히 메질을 통해 다른 기법으로 얻기 힘든 부피감과 기물 표면의 흔적들이 만들어져 은은한 멋을 풍긴다. 한때 혼수의 필수품목이었던 방짜 유기는 1960년대 들어 스테인리스와 양은그릇이 선호되며 징과 꽹과리, 종 등으로만 만들어졌다.
“집집마다 연탄을 쓰며 연탄가스 같은 유해성분에 즉시 반응해 녹이 스는 방짜그릇에 등을 돌렸어요. 오히려 건강의 지표가 돼 주는 것인데 몰랐던 거죠. 공방도 문을 닫고 힘들었죠. 그러다 이제 와서 사람들이 건강을 챙기며 다시 방짜유기를 찾고 있습니다.”
방짜 식기에 독물이 묻으면 변색이 일어나고, 방짜 양푼에 미나리를 씻으면 거머리가 도망가며 방짜 칼에 살이 베여도 상처가 덧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봉주 장인은 현재 경북 문경에서 공방을 운영하며 이수자들을 키우고 있고, 이형근 씨는 경기도의 안양공방을 책임지고 있다. 공방을 오가며 기술을 익히는 손자 이지호 씨는 “전통기법 전승에 대한 할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방짜유기에 대한 사업성 못잖게 전통기법의 전승 보존에도 역시 방점을 두고 일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경택 기자 kt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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