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은 군 전투력과 더불어 국방을 떠받치는 핵심축이다. 1970년 8월 6일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된 국방과학연구소(ADD)와 1974년 대북 전력격차 해소를 위해 수립된 한국군 전투력 증강계획인 율곡사업의 성과로 자주국방의 토대가 마련됐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난 지금 방위산업은 안팎으로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저가경쟁입찰제 도입 등 정부의 비현실적 방산정책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핵미사일 실전배치로 남북 군사력이 역전되는 변곡점을 맞게 된 것도 남북 방위산업의 방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근혜정부에서 방산비리 질곡에서 벗어나 국내 토종방산기업을 국제경쟁력을 갖춘 수출주도형 글로벌 기업, 즉 종합방산업체로 육성하는 것이 신(新)자주국방의 핵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방산시장의 새 패러다임 구축이 시급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국산무기개발은 ‘죽음의 행진’ 프로젝트 = 방위산업은 정부의 토종기업 보호·육성은 뒷전이고 장기간에 걸친 방산비리 수사로 사기를 꺾어놓아 지리멸렬하고 있다. 삼성과 두산 등 대기업들이 방산 부문을 접은 것은 기업 브랜드 이미지만 추락시키고 이윤조차 신통찮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잠수함과 전투함 부문 선두주자인 대우조선해양 특수선 사업부는 빚더미에 앉은 모기업의 부실 여파로 매각될 상황에 처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ADD 주관으로 개발된 K-11 복합소총, K-2 전차 등 K 시리즈 무기체계들은 저가경쟁입찰제의 영향으로 줄줄이 전력화 지연·부실 개발 등 문제를 노출했다. 방위산업계에서는 국산무기개발을 ‘죽음의 행진’ 프로젝트로 비유할 정도다. 한국 방위산업은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1%에도 못 미치고, 기술 수준이 방산 선진국의 80% 이하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정부 예산의 복지부문 투자가 늘어나면서 국방비 증가율은 매년 추락하고 있다. 국방비 증가율은 2007년 8.8%였으나, 2012년 5%, 2014년 3.5%로 하락 추세다. 국방부문 연구·개발(R&D) 증가율 역시 2007년 18.8%였으나 2012년 15.1%, 2014년은 -4.3%를 기록했다.
◇‘싸게 빨리 좋게’ 저가경쟁입찰이 부실 양산 = 저가경쟁입찰제의 부작용도 방산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다. 문제는 방위사업청(방사청), ADD, 국방기술품질원, 업체가 공동 검토를 거쳐 책정한 사업비를 20∼30% 정도 낮게 산정하는 예정가 책정에서 시작된다.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업체들의 과당 경쟁과 저가 응찰이 일반화되면서 낙찰 후에는 하청 및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납품가 후려치기가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하청 및 협력업체에 대한 과도한 경쟁 유도, 특정 협력 업체와 공모한 원가조작 등 비리도 만연하고 있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방위산업의 낮은 수익률과 각종 감사, 검찰 수사에 따른 기업 이미지 하락과 노무현정부 때 전문·계열화 폐지 제도 이후 과장·중복 경쟁과 이명박정부 시절 도입된 저가경쟁입찰 제도 도입으로 ‘싸게 빨리 좋게’의 마른 수건 쥐어짜기식 방산정책은 부실무기 양산과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방산생태계가 황폐화했다”고 설명했다.
저가경쟁입찰 방식의 사업관리는 방위산업의 수익성을 크게 약화시켜 부실한 제품을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납품된 국방제품들이 막상 야전에서 전력화될 시점에는 잦은 결함과 하자발생으로 지금까지 군의 전력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는 결과를 빚었다. 무기체계의 전략적 중요성이나 시장 규모 등을 감안하지 않는 획일적 경쟁체제 도입 역시 저가 출혈 경쟁을 유발해 부실무기 양산의 주범이 됐다. 현 정부 들어 80% 정도로 상향 조정됐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처럼 100% 이윤을 보장하는 대신 비리가 적발되면 단호히 퇴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워크 대표는 “최저가 경쟁입찰과 업체 간 출혈경쟁을 통한 무기개발은 적정이윤을 보장하는 방산의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며 “자발적 인수·합병(M&A)을 통해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국제적 흐름과 유리된 행정편의적 정책으로 방사청과 업체 간의 제도적 갑을 관계를 심화시키는 주범”이라고 꼬집었다.
◇수출 주도형 종합방산업체로 육성 시급 = 방산 전문가들은 현재의 국방비 수준으로는 토종 방산업체가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신자주국방의 성공을 위해 수출주도형 방위산업 육성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한다. 융합형·성과지향형 국방 R&D, 기업대형화·범정부적 지원으로 수출산업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토종 방산기업을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 종합방산업체로 육성하는 것이 방위사업 정책의 핵심이 돼야 하는데도 되레 해외 글로벌 방산기업과 불리한 경쟁을 시켜 토종기업의 성장의 싹을 자르는 일마저 비일비재하다.
미래 전장 환경은 기존 플랫폼(전투기·함정·전차 등) 중심전에서 C4ISR(지휘·통제·통신·정보·감시·정찰)+PGM(정밀유도무기)이 통합된 통합전장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 첨단 정보전자 기술 비중이 증가함에 따라 획득구조의 중심이 플랫폼 업체에서 정보기술(IT)업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홍 대표는 “체계통합 능력을 갖춘 업체 중심의 획득구조로 바뀌고, 플랫폼 업체에서 IT 업체 중심으로 체계통합 중심이 변화하고 있다”며 “업체주도 무기체계 획득사업의 비중 증대를 통한 업체 기술축적 및 수출 연계성을 통한 획득 효과를 극대화한 방산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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