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규모는 세계 1, 2위를 다툰다. 지난 10년 간 연평균 12% 가량 늘었다. 호원경·김빛내리·강봉균 등 국내 과학계를 대표하는 석학 40여 명이 정부 R&D 지원의 ‘풍요 속 빈곤’을 비판하면서 전면(全面) 개편을 요구하고 나섰다. 관(官)이 시시콜콜 개입하는 시스템이 특히 문제다. 올해 19조 원이 넘는 정부 연구비 중 기초과학 제안 과제에 돌아간 것은 고작 6%다. 전체 연구비의 47%를 기초과학에 투입하는 미국은 대부분을 연구자 자율에 맡긴다.

기초과학 연구는 연구자가 호기심으로 시작한 창의적 과제를 긴 시간 천착할 때 예상 못한 성과를 낸다. 그러나 국내에선 정부가 정해준 분야에 지원해야 돈이 나오고, 또 1년 단위로 성과를 검증받는 게 기본이다. 그러다 보니 틀에 박힌 범용 주제, 유행에 편승한 반짝 연구가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 ‘홈런보다 번트로 1루 진출에 만족했다’는 지난해 서울대 공대의 자기반성과도 맥을 같이한다. 일본이 21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낸 비결의 하나로 연구자를 믿고 기다려주는 ‘묻지 마 투자’가 꼽힌다. 당장 돈이 안 되고, 또 가망이 없어 보여도 한 우물을 파도록 도와주는 환경에서 획기적 성과가 나온다. 카이스트는 얼마 전 학부생·교수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공모하면서 ‘현재 핫 이슈가 아니며, 10년 안에 상업화하기 어려운 연구주제’로 못 박았다.

오죽하면 과학자들이 이렇게까지 나섰겠는가. 정부는 흘려듣지 말고 R&D 지원 시스템 쇄신에 즉각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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