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봉 前 국무총리

대통령은 지난 며칠 간 계속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두고 국가적으로 안보의 비상사태를 강조했다. 사상 처음으로 한국이 직접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사태의 전략적 의미 파악이 시급히 요청된다.

핵시대라는 혁명적 군사 여건을 두고, 과거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평화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든가 또는 이제 “전쟁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판단이 6·25전쟁의 휴전정책에 방영돼 핵전략의 역사적 전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아이크의 판단은 반드시 정확한 진단은 아니다. 핵전쟁이 불가하다면 누가 핵 위협에 의해 견제될 것인가. 이에 이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핵을 보유한 강대국들이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는 패러독스가 또한 초래됐다. 이런 상황이 북한 핵 개발의 조건이 된 것이다.

핵 균형은 본질적으로 과두적(寡頭的)인 국제 체계에서 그 체계를 통제하고 있는 강대국에 주로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각기 체계는 그 통제 범위 내에서 하위체계를 가지고 있다. 남북한이 그런 위치를 점한다. 그런데 그 하위체계에 속하는 어느 한 국가가 핵무장을 함으로써 상위체계의 군사적 균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경우에 이르면, 위협 대상이 되는 대국으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될뿐더러, 지역적 하위체계의 문제라는 한계를 넘어 세계 정치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의 핵 문제이다.

이와 관련,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과 중국의 전략에 연결시켜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사태의 성격이 더욱 뚜렷해진다. 중국은 그 외곽방위선을 과거 스탈린의 6·26전쟁 개시 결정에 영향을 주었던 애치슨 라인을 역으로 답습해 시진핑(習近平)라인으로 바꿔 획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대륙의 남단에 속하는 한국까지 그 속에 담을 수 있다면 동해를 방위 외곽으로 해서 일본을 압박해 궁극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한다는 전략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시진핑의 판단으로는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왔다고 보고 사상 처음으로 국가원수 부부가 서울을 방문해 확인 절차를 종결한 것으로 봤을 것이다. 이 때문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를 놓고 외교 예의에 어긋나는 중국의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사드와 관련된 북한의 핵 문제는 관심 밖의 일로 치부됐던 것이다. 그런 중국의 행태 이면에는 역사상 최장(最長)의 제국의식이 엿보이고 근대적 국민주권국가의 세계에 대한 일천(日淺)한 경험이 드러나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그런 이질적 체계의 하위 단위가 본질적인 균형을 파괴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 때문에 만약 전략을 구사한다면 선제타격 아니면 방어전쟁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방어전쟁을 택하게 되면 이는 무자비한 쟁투가 될 것이 뻔하다. 선제타격이 선택된다면 이는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것이 되는데, 이때의 불확실성 요인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한국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6·25전쟁의 경험에 근거해 정치전략이 군사전략에 앞서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2차 대전에서, 스탈린의 정치전략과 다르게 루스벨트는 군사전략을 앞세워 소련을 참전시켜 무조건 항복을 목표로 한 결과, 중국을 잃고 북한을 잃었다. 역으로 6·25전쟁에서는 정치전략을 구사해 승리 없는 휴전이 되고 말았다. 지금 북핵 문제는 다시 전략이 역전해 정치전략 우선으로 갈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바로 중국과 북한이 목표로 하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을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길게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별도로 지금 미국의 여론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한국은 명심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체제 수호에 대한 내부 결속을 통한 굳은 의지를 국제적으로 인식시키는 것은 필수요건이다. 스위스, 이스라엘 등이 좋은 예다. 이를 위해 주의해야 할 것은, 중국의 제국질서(사대질서)에 반(半)천년 동안 젖어온 비군사적 평화의식과 동맹이 무엇인지 모르는 철부지 민족주의 의식이다. 고립과 항복이 평화는 아니다. 막강한 핵강국 미국이 베트콩의 준동에 의해 정치적으로 패배한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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