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6일 신용회복위원회와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서민과 취약 계층의 빚 부담을 덜어준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현재 30~60%의 원금을 감면해주던 일반 채무자에 대해서도 15년 이상 장기 연체해 사실상 빚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취약 계층과 마찬가지로 최대 90%까지 감면해준다. 성실 상환 기간도 12개월에서 9개월로 단축하고 약정액의 75% 이상을 성실하게 갚다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더는 빚을 갚을 수 없는 경우에는 나머지 빚을 탕감해주는 것 등이 골자다. 이로 인해 연간 23만 명이 혜택을 볼 것이란 게 금융위원회의 예상이다.
빚을 탕감해주면 서민과 취약 계층 사람들이 신용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한다면 정부로서 고려할 수 있는 대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인에 반응하는 이들의 행위를 보면 그런 결과는 잘 나오지 않는다. 현 정부 들어 나온 빚 탕감 대책이 벌써 4번째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이는 곧 지금까지의 구체적인 빚 대책이 특별히 잘못 고안된 것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선한 의도’를 담은 정책이 흔히 ‘의도하지 않은 악(惡)’을 낳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빚을 얻어 쓰고 갚지 못할 사정에 처한 사람들의 형편이 안타깝다고 하더라도, 반복되는 빚 탕감은 빚지고 갚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범위와 한도를 점점 확대하게 마련이다. 정부가 서민·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빚을 탕감해주던 것을 일반 채무자에게도 확대 적용하는 최근의 보완 대책이 이를 잘 보여준다. 또, 이로 인한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나빠지고 성실하게 빚을 갚은 채무자와의 형평성에도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빚 탕감 문제를 좁게 보면 일부 취약 계층에 국한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크게 보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가계부채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물론 가계부채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양적완화라는 독약 처방으로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데 주요 원인이 있다. 세계 경제에 편입된 한국으로선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지만, 구조조정보다는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도 없이 지금까지 시행해 온 저금리정책을 비판적으로 평가해 봐야 한다. 가계부채가 저금리정책과 함께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빚 탕감과 관련해 복지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언제 어느 때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취약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고, 이들을 돌보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복지정책은 그가 누구든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른바 무상급식과 노인들에 대한 기초연금 등이 그렇다. 그 속성에 따라 복지 예산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취약 계층의 생활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 규모가 작아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은 복지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확실한 신호다.
정부는 빚 탕감과 같은 문제에 직면해 단편적인 대증요법으로 일관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는 재정정책·저금리정책·복지정책 등을 포함해 나라 경제의 전반적인 운영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 경제는 각 부문이 독립돼 있는 게 아니고 모든 부문이 강하든 약하든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국방과 치안,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필요불가결한 복지정책 등 몇 가지를 제외하면 정부가 할 일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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