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으시지요?”

근대자동차 사장 윤백만이 앞쪽에 앉은 노조위원장 박차랑에게 물었지만 건성이다. 윤백만은 63세, 근대자동차에만 37년을 근무했으니 산증인이나 같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중 하나인 박차랑 또한 55세, 근대자동차에 31년째 근무하고 있다. 물론 둘이 30여 년 동안 매일 얼굴을 맞댄 것이 아니다. 큰 회사여서 죽을 때까지 얼굴 안 보고 지낸 사람도 많다.

둘은 5년쯤 전부터 노사 문제로 얼굴을 익혔다가 이제 주장이 된 셈으로 비슷한 성향이다. 하나가 강골이면 하나는 온건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조합인데 둘이 동시에 대표이사 사장과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됨으로써 세상을 긴장시켰다. 그러고는 예상했던 대로 회사는 파업의 연속, 작년에 이어 올해도 파업 일수가 100일을 돌파할 예정이다. 이제 숫자로 손실 따지는 것은 없고 세인들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노조 데모도 일상사가 되어서 주변 상인들은 소리 없이 떠나갔고 소비자들도 지쳐 있다.

곧 노사 양측 대표들이 장방형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았다. 문이 닫히면서 수십 명의 기자도 밀려 나갔다. 오늘의 회의 주제는 상여금 10% 인상과 해외공장 인력계획을 노사 공동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즉 한국 본사의 노조가 해외공장의 인력관리까지 맡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로 노조는 27일째 부분파업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타협이 될 리가 없다. 사측은 노조 측이 해외 인력관리 카드를 내밀면서 상여금을 따내려는 작전으로 보았다. 항상 이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정보원을 대리 동원하고 있는 사측은 또한 지난번 전(前) 민노총위원장인 ‘배신자’ 최만철의 ‘평양선언’으로 노조가 흔들리자 민노총의 주력인 근대자동차 노조가 ‘맞불작전’을 펼칠 것이라는 정보도 받았다. 그때 박차랑이 똑바로 윤백만을 보았다. 적(敵)이다. 지금까지 수십 번 전투를 치렀지만 명분에서 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근대자동차는 노조원의 피와 땀으로 일어났고 성장한 기업이다. 박차랑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윤백만이 숨을 들이켰다. 저 번지르르한 말에 항상 넘어갔다. 저 잘난 언변 뒤에는 엄청난 ‘힘’이 도사리고 있다. ‘펜과 칼’을 다 가졌다. 저러다가 박차고 나간다고 별명이 ‘박차라’다. 박차랑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한국 최대의 기업노조로서 오늘 사측에 중차대한 선언을 하려고 합니다.”

‘해라’ 이 자식아, 윤백만이 눈에 힘을 주고는 어금니를 물었다. 그래, 같이 죽자. 나도 이제 예순셋, 정년이 다 되었다. 내 평생, 노사가 나란히, 회사 발전을 위해 서로 희생하고 분발하는 세상을 꿈꿔 왔다. 우리 아버지들이 중동, 아프리카에서 공사하면서 달러를 벌어들일 때처럼 말이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우리 작은아버지는 리야드 공사장에서 트럭 운전을 하며 보낸 돈을 작은어머니가 카바레에서 다 날렸다. 제비를 만났던 것이다. 그런데도 두 분은 지금도 잘 산다.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꼭 물어보려고 한다. 왜 용서하셨느냐고. 그렇게 번 돈을 다 제비한테 빼앗겼는데도 왜 받아들이셨냐고. 갑자기 눈이 뜨거워진 윤백만이 어깨를 부풀렸을 때 박차랑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우리 근대자동차 노조는 내일 오전에 투표를 할 예정입니다. 내용은 단 하나, 노조의 모든 권한을 당분간 사측에 위임한다는 내용의 찬반 투표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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