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박근혜정부 핵심 인사들과 연루된 의혹들을 해명하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창대했던 의혹 제기가 무색하게 지루했던 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광석화처럼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조치들은 불안감을 자아낼 정도다.
박 대통령과 40여 년 친분이 있는 최모 씨의 연루 의혹으로 관심을 모았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통합 절차에 들어간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두 재단 해산 전 신규 통합재단을 먼저 설립하기위해 관련 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4일 밝혔다. 불과 나흘 전인 지난 9월 30일 ‘선 해산 후 통합’ 방침을 밝힌 전경련이 시민단체에서 출연자(전경련) 임의 재산 처분 위법 주장과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하자 곧바로 수순을 바꾼 것이다. 하루 만에 재단 설립허가와 기금 출연 계획을 마무리 짓던 전경련이 정작 설립 이후에는 ‘남의 일’인 양 방치하다 의혹이 제기되자 다시 발빠르게 대응한 것은 의혹의 싹을 자르기보다 증폭시킨다. 전경련의 수미일관한 행태는, 모금할 때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것처럼 해산 과정에서도 누군가의 의중을 읽은 것이 아니냐는 추론을 낳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대응은 의혹 제기 이틀 뒤인 9월 22일 나온 박 대통령의 경고를 떠올리게 한다.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일에 검찰이 빠지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관련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팀 관계자는 전경련이 재단 통합 방침을 밝힌 지난 9월 30일 티타임 형식을 빌린 기자간담회를 자청, 우 수석 처가의 ‘강남 땅 거래’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릴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부동산 거래의 성격은 거의 파악이 됐다”며 “팩트만 놓고 보면 자연스럽지 않다고 보기에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이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 그것도 현 정부 최대 실세로 꼽히는 우 수석 사건의 핵심 결론을 이처럼 공식 발표 전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더구나 공교롭게도 이날은 사드 제2 후보지 발표와 국회 파행 등 대형 뉴스가 쏟아져 나온 데다 개천절 연휴 시작으로 뉴스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날이었다.
박 대통령이 지난 9월 23일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사표를 전격 수리한 것도 두 조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읽힌다. 그간 청와대는 공직자의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은 뒤 사표를 수리한다는 입장에 따라 지난 8월 29일 제출된 이 전 특감의 사표 수리를 유보해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25일 만에 이 전 특감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 전 특감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배경이다. 특히 이 전 특감이 우 수석 의혹사건은 물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한 내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의구심을 더 키운다.
중국 무경십서의 하나인 ‘삼략’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국사(國事)를 의심하면 나라를 안정시킬 수 없고, 많은 사람이 조정에 대해 의혹을 품으면 백성을 다스릴 길이 없다. 그리고 의심이 풀리고 의혹이 해소돼야 나라가 안정된다(疑定惑還 國乃可安)고 했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잇단 의혹 제기가 근거 없는 비방이거나 일부 언론과 정치인의 정권 흔들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혹은 불신을 뒤따른다’는 서양 속담처럼 신뢰가 두터운 곳에선 의혹이 자라지 못한다. 우 수석이나 최 씨 본인이건, 그들의 이름을 빌려 호가호위했던 사람들이건 누군가는 불신의 토양을 만들었기에 의혹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과 다르다는 항변만으로는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할 수 없다. 오히려 괴담이 안개처럼 퍼질 뿐이다.
길은 하나다. 국민이 원하고 기대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그것조차 넘어서는 파격으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의혹이 제기됐을 때 청와대가 먼저 특별검사를 요청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게 하고 그 결과를 수용했다면 국민은 향후 박 대통령과 관련해 제기되는 의혹 자체에 의혹의 시선을 보낼 수도 있다. 박 대통령과 무관하다면, 두 재단의 설립을 누가 어떻게 주도했으며, 모금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이런 일이 없더라도 공익 재단은 그런 투명성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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