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한국의 현주소 ②

“이세돌 9단을 알파고가 이겼을 때 ‘정부가 인공지능(AI) 연구·개발(R&D)한다고 나서지 않아야 과학이 제대로 발전할 텐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곧바로 정부에서 AI에 얼마 투자한다는 말 나오더라고요.”(서울 한 대학 기초과학분야 교수)

“포켓몬고 열풍이 불자마자 가상현실(VR)이 국가의 핵심 R&D 사업인 국가전략프로젝트에 포함되더군요. 씁쓸했죠.”(미래 분야 전문가)

첨단과학기술을 토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복합이 왕성하게 이뤄지는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한국의 R&D가 투입 대비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시류에 편승하듯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 없이 ‘보여주기식’ 성과 중심으로만 R&D에 나서는 데 비효율의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 효율성 떨어지는 R&D

국가 R&D 역량이 산업 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기술 개발에만 주목했던 것이 이 같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기초를 다지고 실제 산업 동량을 키울 진정한 R&D가 필요한 시점이란 데는 이견이 없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강한 상태에서는 어느 때보다 ‘기초 체력’이 있어야 하는 만큼, 그동안 “인색하다”거나 “불공평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기초과학 분야 연구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남 못지않은 R&D 규모 = 6일 미래창조과학부와 학계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와 민간에서 이뤄진 전체 R&D 규모는 2014년 기준 63조7341억 원이다. 전년도인 2013년은 59조3009억 원이었다. 2014년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29%, 2013년에는 4.15%를 R&D에 썼다. 우리나라 2014년 R&D 투자액은 605억2800만 달러로, 4569억7700만 달러인 미국이나 1912억500만 달러인 중국에 비하면 크게 적지만, GDP 대비 비중으로는 미국(2.73%)이나 중국(2.08%)보다 오히려 훨씬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5 과학·기술·산업 평가서(STI Scoreboard 2015)에서 “한국의 R&D 지출은 2007∼2013년 사이 실질 증가율이 66%를 기록했다”면서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R&D 예산 규모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3년 17조1000억 원에서 2014년에는 17조7000억 원으로, 2015년에는 18조9000억 원에 이어 올해 19조1000억 원이었다.

◇미래 이끌 성과는 찾기 힘들어 = 엄청난 규모의 R&D 투자에 비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 이른바 ‘킬러 테크’는 찾기가 힘들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R&D 투자의 국제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최고기술 보유현황(10대 분야 120개 전략기술)에서 2014년 기준 미국은 97개, 유럽연합(EU)은 13개, 일본은 9개, 중국은 1개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은 없다.

기술무역수지는 2010년 1분기 이후 올해 1분기까지 25분기 연속 적자다. 기술 수출보다 기술 수입이 많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식재산권 무역 수지는 2014년 45억3000만 달러 적자, 2015년에는 40억 달러 적자였다. 올해 1분기 7억8000만 달러 적자로, 전년 동기 19억7000만 달러보다 적자 폭이 줄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4차 산업혁명 주도국과의 비교에서도 밀려 = 미국을 제외한 독일과 중국, 일본과의 비교에서도 한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뒤떨어진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한·중·일·독 과학기술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3년 과학기술 경쟁력 상대적 규모(GDP 대비 R&D 비중, 연구원 1인당 논문 건수 등 기준) 종합지수는 120.8(2005년 한국을 100으로 봤을 때)이었다. 중국은 50.1, 일본은 152.7, 독일이 137.2였다. 하지만 절대적 규모(R&D 규모, 전체 논문 건수)에서 한국은 196.6인 반면, 중국 614.1, 일본 629.3, 독일 347.6으로 한국보다 모두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차 산업혁명, 기초와 응용 R&D 모두 살려야 = 최근 기초 과학분야 연구자를 중심으로 정부의 연구지원제도 혁신을 요구하는 청원서가 국회에 제출됐다. 미국은 전체 연구비의 46%를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연구자가 대부분 주제를 정하지만, 우리나라는 연구자 주도 창의적 과제에 대한 연구비가 전체의 6%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연구자 주도의 기초연구지원은 소액과제에 편중돼 있지만, 국책연구는 점점 대형화돼 연구비 구조 불균형이 심한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장석범 기자 bu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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