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1882~1945)는 미국의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다. 그가 사망한 후 대통령 권력 비대화와 독재를 우려한 미 의회가 대통령을 두 번까지만 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때의 미국을 잘 이끈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래서 루스벨트를 둘러싼 일화가 넘쳐나고, 그를 다룬 책이 매년 베스트셀러가 된다.
대선의 해인 올해 미국 출판시장에 등장한 ‘게이트키퍼’(The Gatekeeper)도 루스벨트 이야기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실질적인 ‘오른팔’이자 이른바 ‘문고리 권력’이던 여비서 마거릿 르핸드(1898~1944)를 조명했다.
마거릿은 루스벨트를 언급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두 여인 엘리너와 루시에 이은 제3의 여성이다.
엘리너는 루스벨트의 부인이고, 루시는 엘리너의 개인비서였다. 루스벨트는 루시와의 혼외정사로 결혼생활에 금이 가자 엘리너에게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끝내 루시의 손을 놓지 못했다. 1945년 뇌출혈로 쓰러진 루스벨트의 최후 순간을 지킨 이는 엘리너가 아니라 루시였다.
이 책의 주인공인 마거릿 역시 루스벨트와 로맨스가 있었던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염문설이 돌 정도는 아니었고, 그보다는 루스벨트의 아주 충실한 비서로 기록되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루스벨트가 38살의 젊은 나이로 부통령 후보가 된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거릿은 해군부(部) 상사였던 찰스 매카시가 루스벨트 캠프 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선거운동을 돕게 된다.
그녀를 눈여겨본 엘리너가 직접 남편의 비서로 발탁했고, 그녀는 낙선한 루스벨트가 변호사 생활을 하고,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두 번의 뉴욕주지사를 거쳐 네 번의 대통령을 하는 내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몸이 불편한 루스벨트가 바쁜 정치 일정을 뒤로 한 채 조지아 주(州) 왐스프링으로 요양을 갈 때마다 동행했다.
마거릿의 직함은 늘 ‘개인비서’였다. 그러나 백악관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사실상 ‘비서실장’이었다. 루스벨트에게 접근하려면 반드시 그녀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았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이었다.
사랑인 듯 아닌 듯한 남자가 그녀를 스쳐 지나간 것도 이런 탓이었다. 필라델피아 출신 부자인 윌리엄 불릿이 그였다.
1930년대 미국의 초대 소련대사와 프랑스대사를 역임한 그는 입각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거릿과 사귀면서도 모스크바 대사관 주변에서 발레리나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마거릿이 이 사실을 알았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녀는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살았다.
루스벨트가 2차 세계대전을 치르느라 백악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거릿도 격무에 시달렸고 건강은 악화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오히려 하루에 세 갑씩 담배를 피우고, 잠을 청하기 위해 아편에도 손을 댔다. 결국 1940년 7월 엘리너를 대신해 참석한 정부 만찬 행사 도중 쓰러졌고, 이듬해 말조차 할 수 없게 되면서 루스벨트의 개인비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21년만의 퇴임이었다.
루스벨트는 자신이 신병치료를 했던 왐스프링에서 마거릿이 재활 치료를 받도록 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재산의 절반을 마거릿에게 주도록 유언장까지 새로 쓸 정도였다.
그녀는 1944년 매사추세츠에 있는 고향에 머물다 영화관에서 루스벨트의 초췌한 모습이 담긴 뉴스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고 쓰러져 숨을 거둔다. 그녀가 처음 비서 일을 했던 미 해군은 이듬해 3월 마거릿의 이름을 붙인 화물선을 진수했다. 진수식을 지켜봤던 루스벨트도 보름 후 영면했다.
저자 캐서린 스미스는 일간지 기자와 편집장을 거친 북칼럼니스트다. 루스벨트 리더십 강사로 활동할 만큼 루스벨트에 천착한 그가 펴낸 첫 마거릿 르핸드 전기물이다. 대통령과 보좌진간 파트너십을 되짚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터치스톤 펴냄. 352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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