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중국동포 장률 감독의 신작 ‘춘몽’(사진)은 온몸이 굳은 아버지를 돌보며 재개발을 앞둔 낡은 집에서 술장사를 하는 젊은 여인과 그의 곁에 딱 붙어 마음을 얻어내려고 노력하는 세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의 주요 출연진 중 전문 배우는 한예리뿐이고, 세 남자와 아버지 역은 영화감독과 제작자가 맡았다. 양익준·윤종빈·박정범 감독과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가 맛깔스러운 연기로 영화의 맛을 한껏 살렸다. 이들은 모두 실명으로 나온다.
조선족인 예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녀를 버리고 간 아버지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이내 아버지가 몸을 못 쓰게 돼 생계를 꾸리며 병 수발까지 하게 됐다. 예리가 운영하는 ‘고향’이라는 자그마한 술집에는 매일 세 남자가 진을 치고 있다. 한물간 동네 건달 익준과 간질을 앓는 건물주의 아들 종빈, 악덕 업주의 횡포에 급여도 못 받은 채 쫓겨난 탈북자 정범은 예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예리와 세 남자의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이 영화는 서사의 전개가 중간중간 툭툭 끊어지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폐부에 꽂히는 대사와 상징적인 이미지를 붙여 놓은 듯한 구성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인상을 전한다. 흑백으로 흐르는 영상이 캐릭터들의 내면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며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주인공들의 지질한 모습과 말투에 낄낄거리며 웃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우리네 삶이 다 그렇다고 영화는 말한다. 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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