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만약 노벨상 부문에 ‘폴리페서’(polifessor: politics와 professor가 합쳐진 조어)가 신설된다면 아마 우리나라는 금방 수상자를 배출할 것 같다. 세계 어느 대학교수 사회를 봐도 우리 대학만큼 현실정치에 관심이 많은 곳도 드물다. 대선 후보의 싱크탱크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지는 단체에는 어지간한 대학의 교수 전체 수만큼 되는 교수들이 몰려드니 아예 현재 있는 대학을 없애고 ‘문재인 대학’ ‘안철수 대학’ ‘김무성 대학’을 만들자는 사람도 있다. 어떤 교수는 강의와 연구하기에도 바쁠 텐데 하루 종일 시시콜콜한 정치 사안에 일일이 SNS에 코멘트 하는 것을 보면 정치전문인 기자도 따라갈 수 없는 그의 능력이 존경스럽다.

지난 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책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 준비 심포지엄 행사장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참석했는데, 이름을 올린 교수만 500명이고 연말까지 1000명을 달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부 간부를 제외하고 참여교수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렇게 당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정책네트워크 ‘내일’에 200여 명,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공정사회연대’에 200여 명의 교수가 몰려 있다고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손학규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 다른 대선주자들이 합세한다면 우리나라 대학교수의 상당수는 어느 캠프에든 적을 두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미래연구원의 창립발기인이 78명 정도였던 것과 비교해도 참여교수는 몇 배나 많아졌다.

외국에서 한국의 싱크탱크가 이렇게 많은 것을 알면 깜짝 놀랄 일이지만 속살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박정희 시대의 ‘서강학파’나 김대중 시대 ‘중경회’는 학문적 색깔이 비슷한 학자들이 정권의 주요 정책을 입안하고 직접 내각에 참여했다. 또 정권 차원에서 학계의 유능하고 저명한 인재를 스카우트해 참여시키는 방식이었다.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그리고 지금의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도 전두환 정권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에 세제(稅制) 전문가로 영입돼 정계에 입문한 경우다.

미국에는 없는 말이지만 우리 기준으로 대표적인 ‘폴리페서’인 헨리 키신저,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교수 시절부터 정부 부처와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부처의 국장급으로 일하다 다시 교수로 복직한 후 장관으로 간 경우다. 구소련과 러시아 전문가인 라이스 전 장관은 스탠퍼드대 교수로 있으면서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부터 정부에 발탁돼 일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후 아들 부시 전 대통령 때 국무장관으로 활약했다. 이렇게 교수들이 정권에 참여하는 경우는 미국에서도 아주 소수이고 연구·강의 실적 부족으로 대학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렇게 각 대선후보 캠프에 교수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뻔하다. 이기는 후보 진영에 몸담고 있어야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 공공기관 등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이것이 아니더라도 연구용역, 연구비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이후 10월 초까지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 중 교수 출신은 전체 337명 중 77명(23%)이나 될 정도다. 이들 모두 지난 대선에 박근혜 캠프에 참여한 교수들이다. 사실상 해외 ‘망명’ 중인 홍기택 전 산업은행 총재는 폴리페서의 전형이다. 중앙대 교수로 박 캠프에 참여한 뒤 인수위원회를 거쳐 산업은행 회장이 됐다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로 영전했지만 서별관회의 폭로 이후 돌연 사퇴하고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지 확인도 되지 않는다. AIIB에 4조2000억 원을 투자하고 부총재 자리를 얻어냈지만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제2의 홍기택처럼 무능·무책임한 폴리페서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누가 다음 정권을 잡든 이 많은 폴리페서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려면 낙하산 인사는 불가피하고, 국정 개혁은 먼 나라 얘기가 된다. 폴리페서를 찾기 어려운 일본은 올해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 일본 도쿄(東京)공업대 명예교수가 생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돼 과학 분야에서 22번째 노벨상을 받았다. 50년간 오직 한 우물만 판 결과다. 대선후보에게 보내는 관심과 열정의 반이라도 연구와 학생들에게 쏟으면 어떨까.
이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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