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석 부산대 건설융합학부 교수·토목공학

태풍 ‘차바’는 제주도에 초속 50m 이상의 강풍, 부산 마린시티에 8m 이상의 파고, 울산에 357㎜의 폭우를 기록했고, 남부지역에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다. 이번에도 불가항력의 자연재해가 아니라 총체적인 인재였다.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의 효율적인 방어는 과학적 예방과 신속한 대응 및 확실한 복구의 ‘재해관리 삼위일체’가, 정부·지자체·주민이 ‘재해주체 삼위일체’가 됐을 때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태풍에 이런 원칙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기상청의 태풍 진로와 규모의 예측은 부정확했으며, 국민안전처의 늑장 재난경보는 울산 태화시장과 우정시장의 저지대 주민들에게 재산 지키기는 고사하고 대피할 여유조차 주지 못했다. 국가 산업단지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2단지가 이틀간이나 침수됐고, 준공 3년도 되지 않은 부산 방파제가 파도에 붕괴돼 부실공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부산 해운대의 마린시티는 턱없이 부족한 방파제와 배수 시스템으로 파도에 침수됐다. 이는 2003년 태풍 ‘매미’ 이후에도 누차 지적돼온 예고된 재해(災害)다. 주민들의 조망권 요구로 계획보다 낮아진 방파제는 피해를 키웠고, 침수 위험이 있는 자동차들을 대피시키라는 경고 방송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안전불감증도 드러냈다.

재해는 경험에서 배워야 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태풍 대응 실패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우선, 지역 단위의 재해관리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재해는 지역 공무원들이나 주민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재난 관리는 국민안전처의 의사결정과 예산에 목매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역 공무원들은 피동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역이 재난을 총괄할 수 있는 재난체계의 구축, 지역 맞춤형 재난재해를 연구할 수 있는 재해재난연구소와 재난교육 체계의 구축이 시급하다.

다음으로, 도시와 건축 관리에 재해관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기왕에는 도시나 건축계획 단계에서 재해재난은 쉽게 무시돼 왔다.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건물이나 도로를 먼저 배치하고 재난시설은 소외돼 축소되는 게 관례였다. 대도시의 도시계획위원회나 건축위원회에 재해재난 전문가들의 참여가 전무하며, 최근에 재해영향평가가 약해져 약식 사전재해영향평가로 대체돼 왔다. 이번 부산 마린시티 침수 피해는 해안 매립지의 도시 난개발 원인이 크다. 또, 울산 태화·우정 시장의 침수 피해는 고지대에 조성된 우정혁신도시의 난개발과 무관치 않다.

마지막으로, 도시나 초대형 건축물을 조성할 때 재해를 분산적으로 관리하는 저영향개발 기법의 도입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폭우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도시 난개발로 콘크리트 불투수면은 늘어 빗물이 땅으로 침투되지 못해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저영향개발 기법이란 건물, 도로, 공원, 학교, 산업단지에 옥상정원, 투수성 도로나 보도, 빗물정원 및 생태저류지 등의 그린 인프라 시설을 설치함으로써 홍수를 분산 관리하는 것이다. 물론 노후화하고 있는 하천, 우수펌프장, 방파제 등의 개선도 시급하다.

소 잃고도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 정부는 피해 주민들의 빠른 복구 지원을, 현장에서 고생하는 재난 공무원들이나 자원봉사자들에겐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제기된 문제들을 차분하게 파악하고 정밀하게 분석하며 완벽하게 개선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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