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女프로기사 첫 탄생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장
박지은 9단 최초 ‘入神’ 기록
바둑은 고대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논어에 바둑이 등장하고 있어 춘추시대에 바둑이 널리 보급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승려 도림과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두었다고 삼국유사가 전한다. 5세기에 이미 바둑이 한반도에 전파됐고 상류층을 중심으로 즐긴 것으로 추측된다. 가장 오래된 국내 기보는 조선 영조 때인 1765년 민백흥이 쓴 ‘기론’이다. 민백흥은 바둑을 하나의 오락으로 보지 않고 주역의 한 방편으로 이해하려 했다. 20세기 초반까지는 돌들을 미리 배치하고 두는 고유의 순장(巡將)바둑이 성행했다.
현대바둑의 효시는 조남철 9단이다. 조남철 9단은 한국인 최초로 일본기원 전문기사가 된 후 귀국해 1945년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설립했다. 1956년 창설된 국수전은 한국 최초의 바둑기전으로 이때부터 본격적인 프로바둑이 시작됐다.
여성이 바둑을 둔 기록은 고려부터 존재하고, 조선의 허난설헌은 시의 소재로 활용했다. 현대 여성바둑의 시작은 1963년 열린 여류왕위전이다. 여자가 바둑을 두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던 시절에 열린 여류왕위전은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기력에 따라 갑조와 을조로 나뉘어 치러졌는데 여류왕위는 신광여중 3학년이던 조영숙 3단이, 을조 1위는 숙명여중 1학년에 다니던 윤희율 초단이 차지했다. 윤희율 초단은 1967년 일본에서 열린 제2회 한·일 학생친선바둑대회에 참가했고, 이후 쇼와약학대에 입학했다. 학업을 닦으면서도 바둑 공부를 계속해 일본 아마 여류본인방전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75년 열린 첫 여자입단대회를 통해 한국 최초의 여자 프로바둑기사가 됐다.
여류왕위전은 1회로 중단됐고, 1974년 여류국수전이 신설됐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바둑팬의 관심을 받았으며, 방송에서 대국 결과를 보도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YMCA 바둑클럽을 중심으로 대한여성기우회가 탄생했고, 한국여성바둑연맹의 모태가 됐다.
여자바둑은 1990년 여자입단대회가 부활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1990년 2회 대회 이후 매년 여자입단대회를 통해 프로 여자기사가 2명씩 배출됐고, 올해부터는 4명으로 늘었다. 1990년 입단대회에서는 10대 소녀였던 남치형 초단과 이영신 5단이 입단의 영예를 안았고 이후 윤영선 5단, 박지은 9단, 조혜연 9단, 최정 6단으로 이어지는 강자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1994년에는 여류국수전이 아마와 프로로 나뉘었고 EBS여류기전이 신설되면서 일본과 중국에 뒤졌던 여자기사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윤영선 5단이 여류국수전과 EBS여류기전의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99년부터 한국기원 객원기사 자격으로 국내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중국 루이나이웨이 9단은 한국여자바둑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루이나이웨이 9단에 도전하면서 한국 여자기사들의 실력 역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후 여자기사에서도 입신(入神·9단)이 등장했다. 박지은 9단은 2008년 1월 제1회 원양부동산배 세계여자바둑대회를 우승하면서 한국 여자기사 중 최초로 9단이 됐다. 조혜연 9단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 그해 9단으로 특별 승단했다. 여류기사들은 2009년부터 시작된 한국기원의 바둑 보급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성진 기자 threem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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