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 전통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주민들.
코스타리카 전통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주민들.
전영욱 駐코스타리카 대사

한국에서 태평양 너머 저쪽으로 가면 미주대륙의 중간쯤에 코스타리카라는 아름다운 나라가 있다. 코스타리카는 처음부터 공화국으로 태어난 데다가 대토지소유제의 전통 없이 소농으로 역사가 시작되다 보니 봉건주의와 권위주의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이다. 이런 덕분에 코스타리카는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해왔다.

코스타리카는 최근에 기후변화 대응, 환경보호, 생물 다양성, 녹색성장 등 자연 친화적 가치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어왔다. 좋은 날씨, 아라비카 커피, 축구, 화산과 온천, 단위면적당 세계 2위의 생물 다양성, 국토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국립공원 등으로 유명하고, 그래서 늘 이 나라 사람들은 행복하다. 세계에서 행복한 나라를 꼽을 때는 코스타리카가 늘 언급된다. 이와 같은 코스타리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말이 있다. ‘뿌라비다(pura vida= pure life)’라는 것이다. ‘뿌라비다’는 코스타리카에서 약방에 감초 식으로 언제든 쓸 수 있는 인사말이다. 처음 만났을 때, 헤어질 때, 그저 평범한 아침 인사말로, 뭔가 상황이 어려운 친구에게 기운 내라는 의미 등으로 다양하게 쓸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에는 우리나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하나의 행동 양태인 ‘빨리빨리’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그 어떤 종류의 급박함이나 압박감이 없다. 중남미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이 인사말에 대해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다른 중남미 국가 사람들도 어리둥절해 한다. 이 ‘뿌라비다’라는 말은 뭔가 긍정적이고 희망을 갖고 모든 일이 잘되기를 기대하는, 어떤 부정적인 또는 갈등적인 요소도 내포하지 않은 인사말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여유와 행복의 나라, 코스타리카가 최근 ‘빨리빨리’의 나라, 한국을 동경하고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기술혁신, 산업경쟁력, 빨리빨리 처리하는 업무 효율성 등 한국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래서 한국을 대표해 나와 있는 필자의 기고문이 코스타리카 유력 언론의 독자들에게 쉽게 어필되기도 하고, 코스타리카의 대학, 업체, 협회 등에서 필자에게 강연을 해달라고 여러 번 초청하기도 했다. 산업화와 경제발전, 혁신을 주제로 한 대화는 물론이고, 심지어 한글 고전소설 ‘홍길동전’과 ‘춘향전’ 강연에까지 큰 흥미를 보이곤 한다. 코스타리카에서 한국의 인기와는 달리, 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상당기간 드리워진 성장의 그늘 때문에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염려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이 행복의 나라 코스타리카는 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한국의 교육, 한국의 혁신, 한국의 경제성장 등에 관심을 두고 배워야 한다고 들떠 있을까? 이 행복의 나라 코스타리카의 면면을 보면 행복을 느낄 만한 요소가 많이 있다. 이미 언급한 것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코스타리카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니다. 수도 산호세 시내를 들어서면 40∼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고 한다. 그래서 코스타리카인들은 한국인의 효율성과 혁신, 기율, 준비성, 그리고 그 엄청난 많은 일을 빨리빨리 그것도 훌륭히 잘 수행해내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자국의 단점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자국의 장점과 긍정적인 측면에 대한 자랑과 평가도 잊지 않는다. 아니 그들의 장점과 미덕에 큰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군대 없는 평화, 무료 의료와 교육, 사회복지, 그리고 민주주의 전통과 가치를 뿌듯하게 생각한다. 예산이 충분치 않은데도, 지난 연말 이래 코스타리카를 거쳐서 미국으로 향하는 쿠바 아프리카계 불법 이민자들에게 임시거처와 음식, 비상의료를 제공하느라 대통령, 외교장관은 물론 보통 시민들까지 지원에 나서는 모습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한국과 코스타리카는 행복지수와 ‘빨리빨리(성취, 혁신)’ 면에서 서로가 보완이 필요한 나라 같다. 우리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에게서 행복한 삶을 위한 지혜를 배우고,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한국으로부터 혁신과 경쟁력, ‘빨리빨리’를 배우면 어떨까?

우리나라의 산업화, 경제발전, 민주주의, 의료보험, 교육의 경쟁력 등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것들이다. 너무 우쭐해 할 것은 없지만, 우리 스스로 지나치게 냉소적일 필요는 없다. 미흡하고 나쁜 것은 고쳐 나가는 반면, 좋은 업적과 미덕, 장점에 대해서는 자긍심을 갖고 계속 보완·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긍정의 힘은 어려운 현실에 처한 우리 시민들과 대한민국을 더욱 강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 전영욱(55) △제20회 외무고시 △주베네수엘라 참사관 △영사과장 △구주통상과장 △주콜롬비아공사참사관 △중남미국심의관 △주볼리비아 대사 △주코스타리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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