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수교 이후 최악의 분위기다.”
최근 기자를 만난 한 지한파 중국동포 학자는 오랫동안 한국을 오가며 일을 해 왔지만 지금처럼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은 적은 없었다면서 우려를 표했다. 최근 한국에서 세워지는 공자학원의 개막식에 참석하려던 베이징(北京) 소재 한 대학의 외국어대 학장단은 교육부로부터 “단과대 학장은 중앙정부 국장급으로, 국장급 이상은 행사에 참석하려면 외교부의 허가를 먼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통보받고 한국 방문을 취소했다. 사실상 가지 말라는 신호다. 지금까지 외국에 방문하면서 교육부가 아닌 외교부로부터 미리 허가를 받아야 했던 국가는 북한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이 합의해 공동으로 추진키로 한 ‘인문 교류 강화’는 냉기가 돌고 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중국 유명 파워블로거 초청 여행 및 체험 프로그램의 신청자들이 최근 각종 이유를 대면서 전원 참석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각 정부기관과 정부 산하 기관에서는 ‘알아서’ 한국과의 협력 프로젝트를 미루거나 날짜를 잡지 않고 있다. 19일로 예정됐던 중국 어선 불법 조업에 대한 양국 간의 공동단속이 중국 측의 요청으로 취소된 것도 그중 하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발표에 중국 외교 당국이 항의한 데 이어 대중문화 제재, 소위 ‘한한령(限韓令)’이 도는가 하더니 최근에는 중국 어선의 해경 고속정 고의 침몰 사건과 중국 내 ‘삼성 때리기’ 등으로 이어지며 양국 관계가 심상치 않다. 중국은 우려했던 대로 비관세 장벽을 통한 보복에 나섰다. 국가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중국 수입 통관에서 기준 위반으로 적발된 한국산 화장품과 식품은 총 61건으로 전체 236건 가운데 25.8%를 차지했다. 7월 5건보다 12배로 늘어난 것으로 적발 건수가 가장 많았다. 1월 한국산 적발 건수가 4.1%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중국의 애국주의적 선동 결과 한국에 대한 중국인의 여론도 급속히 나빠지고 있으며 한국 내 여론 악화와 함께 서로 악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최근 중국과 관련한 부정적 뉴스가 증가하자 온라인 뉴스 댓글에는 한국을 비난하는 댓글이 달리고 여기에 일부 네티즌이 반격하면서 한국과 중국 네티즌들이 서로를 비방하는 인종차별적이고 인신공격적인 댓글 싸움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는 물론 상업성 매체들과 친(親)중 홍콩 매체들까지도 한국과 관련한 뉴스를 중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리게 자극적으로 편집해 주요 기사로 쏟아내며 ‘적반하장’ 격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양 국민 간의 감정적인 태도가 이후 외교 정책 방향으로 굳어지는 것은 곤란하다. 중국 측의 태도가 거칠다고 해서 안 보고 살 수는 없다. 중국의 도발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민주주의 국가답게 지적할 일은 지적하고 명확하게 우리의 입장을 보이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북핵 위협이라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면 한국과 비슷하게 미국과는 안보, 중국과는 밀접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싱가포르나 일본, 호주 등 역내 국가들의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중국과의 외교 갈등에도 불구하고 경제인들의 교류는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중국은 시끄럽게 반일(反日)을 떠들었지만 결국 시 주석은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와 손을 잡았다.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해 중국 유력 경제 잡지 ‘차이신(財新)’과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좋은 친구이자 동시에 미국의 좋은 친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12일 호주 캔버라에서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 리 총리는 “힘이 곧 정의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남중국해 문제에서 ‘힘의 지배’를 밀어붙이는 중국을 에둘러 비판했다. go@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