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신부 40년 쓴 詩 묶어
세번째 시집‘목련이 질때’펴내
내면·자연에 대한 잔잔한 성찰
인천 부개동 성당 주임신부인 그는 고향이 충북 괴산이지만 중학교 때 인천으로 올라와 내내 인천과 그 앞바다 섬들에서 사목을 했다. 그의 시에는 ‘백령도’ 연작, ‘대부도를 떠나며’, ‘부평시장’, ‘주안역 뒤’ 등의 지명 제목을 단 것들이 많다. 그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는 인천지역 시민사회에서 그는 ‘맏형’으로 불렸다. 그가 문학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주안·부평공단 등 당시 개발과 성장의 짙은 그늘에서 만난 이웃들과 무관하지 않다.
“1970년대 후반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 갑갑했는데, 겁도 없이 시화전을 한번 했어요.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이 많이 도와줬고, 이후에 신경림, 조태일 시인 등 문학인들을 만나면서 등단 기회를 갖게 됐지요.”
이번 시집의 1970∼1980년대 시들이 주로 사회나 이웃들을 향했다면, 2000년대 이후 시들은 자신의 내면과 자연에 자주 눈길을 준다. 호 신부는 “내가 나이를 먹으며 좀 비겁해지기도 하고, 슬슬 편한 것을 찾고, 게을러 진 것”이라며 “세상은 그전이나 지금이나 좋아진 것이 없는데, 부끄럽다”고 말을 흐렸다. 그의 시에 흐르는 바탕의 정조도 “나를 보고 사람들은/예수 팔아먹고 사는 놈이라 했네/그래/그건 참으로 옳은 말씀”(‘사람들은 나를 보고’ 일부)에서 보듯 ‘예수처럼’ 살지 못하는 데 대한 부끄러움과 성찰이다. 이전에도 천주교가 사회정의를 외면할 때 쓴소리를 마다치 않던 그는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은 이전만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드러나지 않게 예수처럼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분들이 한국교회 곳곳에 많지만, 천주교의 ‘간판’이라 할 추기경이나 주교님들의 한마디가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걸 찾아볼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과거 교회의 사회참여도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가 중심이었던 것”이라며 “가르치고 배우는 사제-평신도의 관계가 아니라 평신도들이 주도적으로 교회쇄신이나 발전에 나서야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호 신부는 시집 말미의 ‘시인의 말’에서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사제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천주교 사제는 은퇴해도 공직을 안 맡을 뿐 계속 사제”라며 “그동안은 ‘해야 할 것’, ‘만나야 할 사람’으로 살아왔다면, 앞으로 뭔지 모르지만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바람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호 신부를 ‘깍두기 형님’으로도 부르는 부개동 성당의 신자들은 지난 16일 수년간 성당 단체활동비 등을 절약해 모은 1억5000만 원을 네팔 대지진 이후 붕괴위험 속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 재건사업에 기부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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