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전문가가 북한의 핵미사일 집착은 이른바 ‘바그다드 효과(Baghdad effect)’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정권 붕괴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대량파괴무기(WMD)를 포기했기 때문이므로, 북한 역시 핵을 포기하면 미국의 군사 공격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후세인은 WMD 포기가 아닌 ‘보유’ 때문에 미국의 군사 침공(侵攻)을 당했고, 정권이 붕괴됐다.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전에도 빌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은 후세인이 생화학무기를 여전히 폐기하지 않고 있다는 증언을 잇달아 내놨다. 1998년 2월 18일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과 새뮤얼 버거 국가안보보좌관, 1999년 11월 10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후세인이 걸프전 패배 직후 유엔과 약속한 생화학무기 폐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의 정보기관들도 똑같은 판단이었다. 그러다 9·11 직후 WMD에 의한 테러 가능성을 우려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WMD가 테러 집단에 넘어갈 위험을 차단하겠다며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했다. 하지만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후 미국은 이라크의 WMD를 찾으려 했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조차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WMD에 관해 거짓말을 했다고 하지만, 미국의 정보기관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오히려 후세인이 미국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고 말한다. 이라크 정부는 유엔 사찰단에 끈질기게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생화학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자아냈고, 심지어 핵 개발 의도까지 내비쳤다. 그 결과 WMD가 알카에다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던 미국의 침공이 단행됐고, 정권이 붕괴됐으며, 후세인 자신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북한이 믿고 있는 ‘바그다드 효과’가 사실은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12일 “김정은이 핵 공격을 수행할 향상된 능력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러고 나면 바로 죽는다”고 말했다. 고위직 외교관이 김정은의 죽음을 경고한 것은 매우 ‘비외교적’이고 이례적이다. 이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인내심이 외교적 수사(修辭)를 포기할 정도로 한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북핵(北核)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군사적 조치를 고려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그의 발언은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對北) 제재 결의안 채택을 위해 중국을 압박하고,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엄중한 경고로 보인다. 최근 워싱턴의 분위기는 북한과 무조건 대화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김정은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그중 “북한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을 수 있지만, 북한 옆에 한국이 있기 때문에 미국은 (군사공격을) 주저하게 된다”는 워싱턴 싱크탱크 관계자의 발언이 귓가를 맴돈다.
이러한 미묘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선 결국 한국의 입장이 관건이다. 한국과 미국이 얼마나 합의된 대북 전략과 전술을 펴느냐가 중요하다.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동원해 김정은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하나의 옵션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적 수단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 협상장에 끌어내는 것이다. 핵심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두 가지 옵션을 함께 가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북한을 협상장에 불러내기 위한 노력을 병행(竝行)해야 한다.
한·미 양국이 국제사회와 더불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김정은 정권의 안보를 위협하면 중국이 반발할 것이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대북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북한을 협상장으로 불러내기 위한 방안을 중국과 공유해야 한다. 연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중국은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추진’을 거론한 바 있다. 일단 북한의 ‘검증 가능한 핵 동결’을 전제로 현 휴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 시 그 효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실질적 조건을 남·북·미·중이 협의할 수 있다. 단순히 평화협정을 넘어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논의와 북한 비핵화 논의가 함께 진행된다면 북핵 문제를 정권교체를 통해 해결하는 시나리오를 지연시킬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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