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계용묵 소설 ‘별을 헨다’의 배경 남대문시장
계용묵은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백치 아다다’(조선문단, 1935년 5월) 한 편만으로도 한국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평생 성실한 작가적 자세로 힘없는 사람들의 소박한 희망과 아픔을 단정하고 기품 있는 문장으로 형상화했다. 이념의 광풍 시대였던 해방기에 계용묵은 좌우익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중간파의 입장에서 현실의 혼란과 그 속을 헤쳐나가는 약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계용묵이 거대하고 획일적인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그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더욱더 구체적으로 작품화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별을 헨다’(동아일보, 1946년 12월 24∼31일)는 “당시의 작품으로 해방 직후 삼팔선의 상황, 남북한의 경제적 어려움, 서울의 주택·물자난, 도덕적 타락과 무질서 등 많은 문제를 적은 분량으로 이만큼 적실하게 반영한 작품은 찾아내기 어렵다”(이주영, ‘계용묵 소설 연구’, ‘어문학’, 2005년 3월, 658쪽)는 평가가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해방기에 쓰인 어떠한 작품보다도 서울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낸 수작이다.
식민지 시기가 수많은 사람이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해방은 떠나간 사람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새겨볼 수 있다. 별을 헨다는 해방이 되어 조국에 돌아온 사람들이 다시 피란민이 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을 담은 소설이다. 만주에서 살던 주인공은 안전을 이유로 육로가 아닌 배를 타고 인천에 내렸다가, 그 사이 삼팔선이 그어지는 바람에 이북에 있는 고향 대신 서울에 머문다. 만주에서 귀환한 주인공은 집이 없어 “가마니 한 겹으로 겨우 둘러싼 산경의 단칸 초막”에서 어머니와 살아가는 것이다. 산사태가 날지 모른다고 산아래 마을 사람들이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이들은 낙엽조차 맘대로 긁어서 쓸 수 없는 지경이다. “한 칸의 집, 한 자리의 일터”도 얻을 수 없는 생활을 하며, 이들은 차라리 만주에서의 생활이 나았다고 생각할 정도다. 제목인 별을 헨다는 최소한의 주거환경도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잠자리에서 별을 세야만 하는 적빈(赤貧)의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 모자의 삶은 시대적 전형성을 지닌다. 해방 이후 주인공 모자처럼 만주에서 남북한으로 유입된 인구는 75만3322명이고, 그 가운데 1947년 말까지 남한으로 귀환한 인구는 34만3581명에 이르렀다.(야마무로 신이치, 윤대석 역, ‘키메라-만주국의 초상’, 소명출판, 2009년, 341쪽) 만주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에서 돌아온 동포들과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민들로, 해방 한 해 전인 1944년 약 1656만 명이었던 남한 인구는 별을 헨다가 쓰인 1946년에는 약 1937만 명으로 300만 명 가깝게 증가한다.(박상하, ‘경성상계사’, 푸른길, 2015년, 357쪽)
해방이 되자 서울에는 주인공과 같은 수많은 귀환동포와 더불어 월남민들이 대규모로 밀려들었던 것이다. 집을 등지고 내려온 그들에게 집이 있을 리 없었고, 이들은 주로 서울의 산기슭 밑에 몰려들거나 한강 다리 밑에서 겨우 비바람을 막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별을 헨다에 등장하는 판잣집의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원시적 움막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결과다.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김동리의 ‘혈거부족’(‘백민’, 1947년 3월)에서도 서울 삼선교와 돈암교 사이 구릉 같은 산지 일대의 방공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별을 헨다에서 주인공 모자를 구박하는 산아래 마을 사람은 이들에게 방공호에 가서라도 살라고 몰아붙인다. 장춘단이 피란민 소굴이라는 말도 등장하는데, 실제로 해방 이후에는 장춘단에 귀환동포와 월남민들이 거주하던 천막촌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으로 넘쳐나는 해방 이후의 거리에는 주인공처럼 작지만 단단한 윤리의식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겨레도 모르고 양심에 눈 감은 무리들”도 넘쳐난다. 그러한 무리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주인공의 친구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대문시장은 “무서운 판”이자 “총소리 없는 전쟁 마당”으로서 그곳에서는 생존의 몸부림만으로 가득한 해방기의 풍경이 살벌하게 드러난다. 친구는 헐값을 주고는 스물다섯 살의 어수룩한 청년이 파는 가죽점퍼를 빼앗는다. 청년의 점퍼가 만주산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청년 역시 귀환민으로서 살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가지고 무작정 시장에 나온 것이다. 주인공은 그 시장을 채운 모든 사람이 “소리 없는 총들을 마음속에 깊이들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조선 후기부터 이현시장(동대문시장), 시전과 더불어 서울의 3대 시장으로 손꼽혔던 남대문시장(조선시대 이름은 칠패시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시장이다. 남대문시장은 우리 현대사에서 귀환동포나 월남민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해방 직후 “서울로 유입된 많은 해외동포와 월남민 등이 무허가 시장과 노점으로 흘러들었다”(박은숙, ‘서울의 시장’,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7년, 223쪽)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다. 6·25전쟁 이후에는 빈손으로 내려온 월남민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군복과 담요, 시레이션박스(C-ration Box) 등의 물건을 닥치는 대로 팔면서 상권을 장악해 나갔으며, 이로 인해 남대문시장은 아버지 혹은 늙은이의 이북 방언인 ‘아바이’를 붙여 ‘아바이 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위의 책, 233쪽)
만주에서 귀환한 청년이 살기 위해 자신의 점퍼를 팔고, 그것을 또 만주에서 귀환한 다른 이가 거의 강제로 빼앗다시피 하던 적나라한 지옥도가 펼쳐지던 남대문시장은, 2000년 3월에는 관광특구로 지정될 만큼 하루 수만 명의 외국 상인과 관광객들이 몰려 오는 세계적인 시장으로 성장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귀환민과 월남민들에게 개방적이었던 남대문시장의 전통은 오늘날 전 세계를 향해 그 너른 품을 열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별을 헨다가 담아낸 해방기 풍경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본인 재산 즉 적산가옥에 대한 부분이다. 해방될 때까지 이 땅에 살던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 즉 적산(敵産·해방 당시 한국에 살던 일본인이 일본으로 돌아갈 때 한국에 두고 간 재산)의 처리문제는 해방 직후 가장 중요한 사회적 문제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당시 적산의 자산적 가치는 당시 조선이 보유한 총 국부의 무려 80∼85%에 이를 정도의 엄청난 규모였다. 이러한 적산의 처리는 거의 전적으로 미군정의 손에 달려 있었는데, 군정법령 제2호(1945년 9월)와 고작 3개월 후에 발표된 군정법령 제33호에서 사유재산의 처리방침이 완전히 상반될 정도로 미군정은 적산에 대한 분명한 입장도 정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이러한 미군정의 무원칙하고 철저하지 못한 관리방식은 결과적으로 적산의 소유자를 애매하게 만들어 놓아, 협잡배와 모리배들로 하여금 법도 원칙도 없이 귀중한 공적 재산을 횡령·착복하거나 탈취·강점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떤 이는 해방 직후 적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파렴치한 재산 쟁투전은 한국 현대사의 갖가지 부정부패를 구조화시킨 온상으로까지 보기도 한다.(이대근, ‘귀속재산 연구’, 이숲, 2015년, 347∼440쪽)
이외에도 이 작품에는 대낮의 골목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총소리 직후 미군 구급차가 경적 소리를 울리며 “서대문 쪽을 향하여 종로 한복판을 질풍같이 달리는”데, 이것은 해방 직후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등이 암살당했던 것처럼 폭력이 난무하던 해방기의 전형적인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산아래 마을 사람들의 성화로 이들 모자는 야산의 초막에서도 살지 못하게 되어, 마지막 수단으로 고향이 있는 이북행을 결심한다. 하나 남은 담요에다 아버지의 유골을 덧말아 등에 진 아들과 냄비 두 개에 바가지 하나를 든 어머니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이들은 뜻밖에도 이제 막 월남한 고향 사람을 만난다. 이들 모자는 고향 사람을 통해 이북의 사정도 남한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 한다. 그 순간 “물 쎈 바다같이” 갑자기 휑해진 대합실 안에는 한기만이 떠돌며 작품은 끝난다. 대합실은 ‘물이 다 빠진 바다’에 비유되고 있는 것인데, 이때 등장한 바다의 이미지는 이 작품의 독특한 공간 상징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다.
별을 헨다는 주인공이 산꼭대기에 올라가 까치발을 해 “고향의 앞바다”를 보려고 애쓰는 모습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앞산이 가로막아 “고향의 앞바다, 푸른 바다, 시원한 바다”는 끝내 보지 못한다. ‘고향의 바다 대 타향의 산’이라는 이분법이 성립하고 있으며, 이것은 ‘이상 대 현실’ 혹은 ‘현재 대 미래로서의 과거’라는 이분법으로 그 의미를 확장시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그나마 볼 수는 없었지만 산 너머에 존재하고 있던 바닷물이, 작품의 마지막에는 아예 사라져 버린다. ‘총소리 없는 전쟁 마당’에서 친구처럼 ‘용사’가 될 수 없었던 주인공은 남북한 어디에서도 별빛을 가려줄 집 한 칸을 마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지나치게 단순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시대적 진실의 한 단면이 날카롭게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그 문학적 의의는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주요뉴스
시리즈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