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가 국내정치의 쟁점으로 등장하게 된 건 사상 첫 지방선거 이틀 전 북한으로 쌀 실은 배를 떠나보내던 1995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배가 청진항 입항 때 북한 당국이 인공기를 게양하게 해 ‘쌀 주고 뺨맞기’란 신조어가 나왔다. 10개월 뒤 총선 때는 중무장 북한 병력이 판문점에 난입하면서 ‘북풍’을 일으켰고, 2000년 총선 사흘 전에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 사실이 발표됐으며, 200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곤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이 2012년 대선 정국을 벌집 쑤시듯 해놨다. 이젠 유엔에서의 북한 인권 결의안 표결을 둘러싼 전직 장관의 회고록이 국가적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 도마에 오른 건 북한도 회고록도 아니다. 회고록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국가정보원장에게 개인적 의견을 물은 것도, 또 그 물음에 굳이 답한 것도 이해가 안 가지만, 정작 이해 안 되는 건 이 논란의 핵심이 국정원이 됐단 점이다. 국가안보의 최전선에서 활약했지만 회고록 한 권 안 남기고 모든 걸 무덤까지 안고 간 사람도 있고, 말년에 자기 합리화로 스스로를 미화하는 사람도 있지만 회고록을 쓸 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을 누설한 사람들은 나름의 명분을 밝히고 있다.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을 반대하던 버턴 휠러 당시 미국 상원의원은 독일 잠수함들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던 대서양을 건너 미 육군을 수송하려던 계획을 폭로한 바 있다. 당시 헨리 L 스팀슨 국방장관이 반역까진 아닐지라도 체제전복 행위일 수 있다며 비난했지만, 휠러 의원은 미국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걸 막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그도 막상 진주만 폭격이 있자 참전에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1970년대 마이클 해링턴 하원의원은 당시 윌리엄 콜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의원들의 비밀준수 서약 후 진행한 브리핑 내용을 뉴욕타임스에 제공해 파문이 일었다. 그는 비밀준수 서약이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CIA의 불법 공작까지 비밀로 지켜줄 의무를 부여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개의 외교안보 사항은 국민의 주머니 사정이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데다 복잡하고 거시적인 분석을 요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관심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언론 역시 국가기밀 사항을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지는 않고 정보를 입수했더라도 보도엔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당시 장관이 친절하게(?) 새로운 사실을 공개해 주고 이 사실로 인해 정쟁이 발생하면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의 책임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도 가치는 매우 커진다. 그 때문에 미국의 신문업계에선 우리 신문이 보도하면 특종, 다른 신문이 보도하면 기밀누설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다.
공직에서 물러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더라도 관련된 공식 문서의 비밀해제가 되지 않았거나 관련 사실을 공식기관이 확인해 줄 수 없는 사안이라면 절차적 시비나 또 다른 정쟁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이번 회고록 파동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 쓴 회고록 역시 배포가 중단된 상황이다. 이번 논란의 초점은 언론에 보도될 만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된 업무인 국정원보다는 민감한 사안을 공개한 명분의 타당성 여부에 맞춰져야 한다. 당시 저자가 견지한 입장에 대한 명분이 아니라, 당시 상황을 지금 공개하기로 한 결정에 대한 명분을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