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에 젖어 ‘늪지형 성장’
4차 산업혁명 바뀐 시점에도
주력산업은 20년째 변화없어
창의 리딩그룹이 신성장동력
4차혁명 핵심‘융합’ 교육위해
대학 자율성·다양성 보장해야
저출산·고령화 심화 막으려면
경력 단절 않는 문화 조성하고
임금피크제로 기업부담 줄여야
지니계수 크게 안 벌어진 상태
양극화 과장 바람직하지 않아
中복지 中부담 사회 합의 필요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돌입했다는 경고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를 극복할 근본적인 해법은 없는 것일까.
민간 경제연구기관인 현대경제연구원 강인수 원장은 지난 25일 오후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그동안 신성장 동력이 보이지 않았고, 경제 역동성이 줄었다”고 저성장 원인을 진단했다. 강 원장은 교육개혁을 통해 창의적인 리딩 그룹(leading group)을 육성해야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복지 수요 확대 등 우리 경제사회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서도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 ‘성장에 방점을 둔 분배 개선’, ‘지속 가능한 복지’ 등의 키워드를 해법으로 내놨다. 결국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야 우리 사회의 장기 과제도 풀릴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 한국 경제가 저성장 장기화 국면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성장률이 3%대 초반인데, 우리 잠재성장률은 추세적으로 떨어져 2%대 중후반으로 보고 있다. 이를 새로운 균형 상태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보다 경제 베이스가 훨씬 큰 미국이 올해 1.6%, 내년 2%대 초반 성장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경제는 현재 ‘늪지형 성장’을 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주력산업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신성장동력이 보이지 않았고, 경제 역동성도 줄어들었다. 4차 산업혁명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시점인데도 우리 경제의 구조 변화는 거의 없었다. 관성에 젖어 위기의식이 없었다. 그동안 미래에 대비할 시간과 돈의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니다. 하지만 수성에만 매달려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았다.”
― 어떻게 해야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나.
“성장률은 생산요소인 노동 및 자본 투입과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로 구성된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구조가 바뀌어 이제 노동 투입을 통한 경제성장 기여도는 마이너스가 됐다. 기업은 불확실하니까 자본 투입을 안 한다.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 불확실성 제거, 정책적 지원, 외국인 투자 유인 등의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생산성은 노동 투입당 산출물로 표현되는데, 이는 인적자본 투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 수요와 괴리된 대학교육으로 인해 재교육 비용이 많이 들고 있다. 그래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과정을 대학에서 이수하면 최소한의 직무 능력을 갖춘 것으로 판단하는 제도가 시행 중인데 효과가 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부가가치가 한 해 100이 만들어진다면 80∼90은 일상 업무를 성실하게 하는 사람들이 만든다. 나머지 10은 창의적인 리딩 그룹에서 나오는데, 여기가 정체 상태에 있다. 4차 산업혁명 키워드가 융합이다. 대학에서 융합 교육이 잘 돼야 한다. 이런 리더들이 잘 육성되면 생산성 제고가 가능하다. 아울러 집단 이기주의와 계층 갈등 등으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측면도 꽤 있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끌어낸다면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 창의적 리딩 그룹이란 무엇인가.
“직무 기술을 배우면서도 펀더멘털(기초)에 충실한 교육이 융합의 기초이고, 이런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다. 백의의 천사로 유명한 나이팅게일은 통계학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그는 병원 위생 상태가 안 좋아 병사들이 많이 사망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통계적으로 입증해 병원 시설 현대화를 주장했다. 기본을 잘 이해한 다음 다른 부분에 민첩하게 적용해야 ‘점프 업(jump up)’할 수 있다. 그게 융합이다. 우리는 그동안 창의적인 그룹이 부족해 ‘퍼스트 무버(first mover)’보다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 만족해야 했다. 이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도록 고등교육의 다양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 대학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도 보장해줘야 한다.”
― 저출산 고령화 심화가 성장 잠재력을 더 떨어뜨리고 있지 않은가.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인식을 해야 풀릴 수 있다. 출산율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생산가능인구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여성들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는 기업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또 하나 고령자 일자리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은퇴 시기와 연금 수령 시기 간격이 10년 정도 된다. 이를 메워야 한다. 정년 60세로 늘려놨는데, 기업에 부담이 크다. 그래서 기업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임금피크제 확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의 경우 법으로 정년 폐지와 정년 연장, 계속고용의무제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90% 넘는 기업이 계속고용의무제를 선택했다. 유연한 근무체계를 도입해 기업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고령자들의 숙련도를 활용하면서 생활이 가능한 임금을 주고 기업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세계화 추진의 단점은 양극화 심화 가능성이었다. 국가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한 국가 안에서도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격차가 심해졌다. 그래서 중산층을 복원하고, 계층 간 소득 격차가 너무 크지 않게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가 양극화가 심화됐냐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소득분배 불평등 지표로 많이 쓰이는 지니계수가 그동안 시장소득 기준으로는 악화했지만 가처분소득 기준으로는 개선됐다. 엄청나게 벌어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양극화를 너무 과장해 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대선 주자들이 전부 성장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동반성장, 국민성장 등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분배만 내걸면 잘 안 먹히니까 거기에 방점을 두면서도 뒤에다 성장을 붙이는 측면도 있다. 성장과 분배는 같이 가되, 지금은 성장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다 .”
―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는 방법은.
“예컨대, 무상보육 정책으로 0∼1세 아이들은 부모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보육비를 지원받는다. 하지만 부모들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똑 같이 하다 보니 출산율 제고 효과는 별로 없었다. 맞춤형으로 해야 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더 늘리고, 부모들이 필요한 시간대에 아이를 맡아주는 등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무상복지라고 누구나 다 100을 받을 필요는 없다. 50을 받아도 효율성과 만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무조건적 복지 확대보다는 불평등을 줄이면서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복지를 늘려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중(中)복지 중(中)부담’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부담은 안 하고 혜택만 많이 받으려고 하면 지속가능성이 없다. 많이 낸 사람은 많이 받고 적게 낸 사람도 어느 정도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가 돼야 복지 시스템이 굴러간다.”
김충남 기자 utopian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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