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논설위원

이번 주 시작된 내년 예산안 심의는 ‘세금(稅金)전쟁’의 양상을 띨 듯하다. 야당이 일제히 법인세 인상안을 내놓고 여당과 일전불사를 공언하고 있어서다. 법인세 증세는 야당의 단골메뉴지만 과거와 기류가 좀 다르다. 거야(巨野) 의석을 확보했고, 야 출신 국회의장이 세입예산안 부수법안으로 지정하면 직권상정도 가능하다. 이번에는 독자적으로 관철할 카드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내년 대선과 맞물려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래저래 여야의 최대 전장(戰場)이 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인세 과세표준 500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는 안을 내놓았다. 국민의당은 현행 200억 원 초과 구간을 유지하되 최고세율만 24%로 높이는 안을 제시했다. 다소 차이가 있어도 대기업을 주 타깃으로 삼은 것은 같다. 양당은 이명박정부가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했는데도 투자·고용에서 낙수효과가 없었다며 재인상을 주장한다. 최근 미르재단 등에 대기업들이 기부금을 낸 것을 두고 “그럴 돈이 있으면 세금으로 내라”는 정서적 공격도 곁들인다. 복지 수요가 해마다 급속히 늘어가는 상황에서 증세 불가피론이 힘을 얻고 있는 건 사실이다. 심화하는 소득격차 해소도 시대적 화두다. 야당은 법인세를 올리는 것이 그 해결책인 양 몰아가지만, 의도적 오류다.

양 당의 법인세율 인상안을 적용하면 각각 연 3조 원 가까운 세수 증가가 예상된다고 한다. 지난해 담뱃세 인상만으로 더 거둔 세금 3조5000억 원보다 적지만, 이런 세수 효과도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지난주 한국금융학회 등이 주최한 정책심포지엄에서 김성현 성균관대 교수는 “대기업 법인세율이 2%포인트 인상되면 세수가 1% 증가하지만, 장기적으로는 0.2% 감소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오히려 2009년 법인세율을 낮춘 이후 2013년까지 법인세수는 연평균 9.4% 증가했다. 세율이 높다고 세금이 더 들어오는 건 아니다. 그리스가 재정위기 타개책으로 법인세율을 20%에서 29%로 올렸다가 세금 낼 기업이 국외로 사라지는 낭패를 겪은 것이 그 예다. 반면 스페인은 30%에서 25%로 내린 후 보란 듯이 재기했다.

민주당은 법인을 의인화하면서 부자증세론을 펴왔다. 그러나 법인의 대주주가 부자일 수는 있어도 법인이 부자는 아니다. 법인세는 주주와 종업원, 소비자에게 귀결된다. 조세정책연구원 분석으로는 법인세 인상에 따른 부담이 100일 때 근로자에게도 30∼35가 돌아간다. 법인세 인상이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처럼 법인세에 3단계 누진율을 적용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벨기에 정도이고 대개는 단일 세율이다. 법인에는 빈부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유독 한국에서만 엉뚱하게도 경제민주화 의제와 묶여 있다. 한국의 법인세율은 OECD 중간 수준이지만 전체 세수에서 법인세 비중은 14%로 OECD 평균(8.5%)보다 훨씬 높다. 여기에 기업이 주로 내는 각종 준조세는 법인세보다도 많다. 이런데도 정치권이 매번 애꿎은 희생양으로 삼는 건 법인에는 표(票)가 없어 조세저항도 없기 때문이다.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법인세가 아닌 소득세를 손보는 게 조세의 정석이다. 소득세 비중은 OECD 국가의 절반 수준이어서 여지가 있다. 야당은 소득세 인상안도 내놓긴 했다. 민주당의 경우 5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41% 세율을 물리는 안이다. 소득세수를 늘리려면 고소득자에게 더 부담을 지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세율 인상 이전에 세원(稅源)을 넓히는 노력이 우선이다. 그러나 근로소득자의 48%가 단 한 푼 세금도 안 내는 비정상에는 여야 모두 외면한다. 연말정산 파동을 지켜보고 터득한 처신이다.

최근에는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과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여기에 유일호 경제부총리까지 잇달아 ‘부가가치세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모두 ‘당장은 아니다’는 식으로 황급히 발을 뺐다. 표심 이반을 의식했을 것이다. 정치인에게 증세는 민감한 단어다. 그래서 민주당은 법인세 인상 대신 굳이 ‘법인세 정상화’란 표현을 쓴다. 국민의당은 “왜곡된 실효세율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며 명목세율 인상엔 신중했으나 결국 법인세 저격에 합류했다. 진실에 눈감고 표만 쳐다보는, 비겁한 세금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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