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신 정치부 부장

‘박근혜 정권이 망한다면 아마도 문고리 3인방(안봉근·이재만·정호성) 때문일 것이다.’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곳곳에서 나돈 이 경고음이 ‘비선 실세’ 최순실 PC 문건 공개로 박근혜정부의 둑이 무너지는 조짐이 나타나면서 또다시 회자되고 있다. 박 대통령 집권에 헌신한 문고리 3인방 수족을 출범 초기 진작 잘랐다면 ‘십상시(十常侍)’며 ‘문고리 내시’며 ‘팔선녀’라는 기상천외한 조어로 정권이 희롱당하는 얄궂은 운명과 맞닥뜨리진 않았을 것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박 대통령이 최태민·최순실의 사교(邪敎)에 씌어 이런 일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극언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2014년 ‘비선 실세’로 지목받은 ‘정윤회 국정 개입 사건’은 박 대통령이 측근 인사의 폐해를 극복하고 부패 고리를 잘라낼 절호의 기회였지만 실패했다. 당시 박 대통령 집권에 기여한 원로 7인회 멤버였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 비서관, 박 대통령 친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등은 국정 농단의 주범으로 인식된 문고리 3인방과 정윤회 씨를 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표적부터 잘못 골랐다. 겉으로 드러난 정윤회 씨는 허수였다. 진짜 실세 최순실 씨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다.문고리 권력의 전횡에 맞서 쓴소리를 뱉었던 유승민 의원까지 배신의 아이콘으로 찍혀 피 흘리며 퇴각한 이후 무적불패 문고리 3인방과 최 씨의 앞길은 무풍가도였다. 최고 권력을 등에 업고 정적들이 제거되면서 그들만의 세상이 됐다. 청와대와 고위직 인사까지 좌지우지하면서 ‘모든 길은 최순실로 통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국정 농단은 정점을 찍었다. 박 대통령에게 직언하고 충언하고 고언을 하는 인사는 찾기 힘들어졌다. 청와대와 고위 공직자들은 최 씨와 문고리 눈치 보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로 채워졌다.

‘수렴청정’을 연상케 하는 최 씨의 사고방식은 봉건왕조 시대나 ‘새마음 봉사단’을 하던 군사정권 시절 수준에 머물렀다. 배신을 멀리하기 위해 측근을 절대 신뢰한 통치 스타일은 ‘또 다른 배신’을 낳고 말았다. 최 씨가 박정희 대통령을 ‘과거 각하’라 호칭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사람은 의리가 필요해. 내가 언니 옆에서 의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내가 이만큼 받고 있잖아.” 최 씨의 측근인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했다는 이 발언은 군사정권 시절 군주에게 아부하는 ‘간신배 사고방식’의 전형이다. ‘권력 창출에 기여하고, 정권에 충성한 만큼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 내 몫의 전리품만큼은 반드시 챙기는 게 의리’라는 사고방식이다.

가깝다고, 친하다고, 잘 따른다고, 의리 지킨다고 측근 인사를 기용했다간 패가망신에 그치지 않는다. 잘못된 권력은 한 집안을 통곡하게 만들고, 무겁게는 한 나라를 통곡하게 만든다. 국가·민족·국민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줄 뿐이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최 씨와 결탁해 심부름꾼 노릇을 한 문고리 3인방은 한시바삐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정책 과오를 바로잡고 대통령에게 충언과 직언, 고언을 할 인사들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하는 것이 급선무다. 박 정부가 기사회생할 마지막 기회다. csjung@munhwa.com
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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