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등 비선(秘線) 실세들에 의한 국정 농단의 실상이 언론을 통해 연일 드러나면서 국민의 충격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 이외에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최순실이 대기업들에서 수백억 원의 기금을 받아 수상한 재단들을 설립한 것도 모자라,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고 주요 국정 현안과 인사 문제에까지 개입한 정황만으로도 이 사건은 국가 운영 시스템을 붕괴시킨 국기문란 행위이다. 더욱 참담한 현실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초래한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이틀 전 발표한 진정성 없는 사과문이 보여주는 것처럼 관련 의혹을 축소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으로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고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대학마다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을 주장하는 성명서가 잇달아 발표되고 있고, 일부 야당 인사들도 탄핵을 거론할 정도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경제 위기에 직면한 현실, 탄핵 정국이 초래할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또 내년의 대선 일정을 고려하면 여야 정치권이 신중하게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야당은 퇴진이나 탄핵을 요구하는 과격한 주장에 휘둘리지 않는 성숙한 수권 정당의 면모를 보이기 바란다.
이제 대통령과 정치권은 이번 사태로 인한 국민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한다.
우선, 박 대통령은 본인의 과오를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국정 쇄신의 분명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러자면 청와대 보좌진과 내각에 대한 전면적 인적 교체를 단행해야 한다. 특히, 이원종 비서실장과 우병우 민정수석을 포함한 수석비서관과 ‘문고리 3인방’으로 알려진 실세들을 전부 교체해야 한다. 이들은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을 방조한 책임이 있다.
다음으로,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서는 여야 합의 아래 특검(特檢)을 발의하고 대통령이 즉각 수용하기를 기대한다. 비선 실세의 각종 국정 개입 의혹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법적 조치를 위해서는 특검 도입이 필수적이다. 청와대의 통제 아래 정권 비호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는 검찰 수사로는 국민의 분노와 의혹을 잠재울 수 없다. 검찰이 최순실 사건에 관해 수사를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났지만 그동안 압수·수색도 하지 않아 핵심 관련자들은 해외로 도피했고 증거들은 인멸됐다. 그마저 언론이 버려진 PC에서 증거를 찾아서 보도하고 PC를 검찰에 제출하는 웃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히 민주당이 요구한 최순실 의혹 특검에 유보적이던 새누리당이 26일 의원총회에서 특검 도입 당론을 정하면서 실현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특검의 형태와 특검 추천권을 둘러싼 여야의 협상은 진통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여당이 특검 도입에 합의하고도 대통령과 청와대 관련자들을 옹호하는 행보를 보이거나 최순실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민심을 외면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국민의 분노가 여당을 향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 대통령도 여야가 특검에 합의하면 이를 즉각 수용해야 한다. 더불어 특별검사 임명에 대해 중립을 지키고 대통령 자신도 조사에 협력할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 이러한 과감한 결단을 해야 국민에게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진정성이 전달되고 남은 임기를 마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치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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