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처음으로 10%대로 떨어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이 절정에 이르면서 27일 갤럽조사에서 14%를 기록했다고 한다. 매일 급락하는 추세라면 한 자릿수 지지율도 현실이 될 수 있다. 탄핵 투표만 안 했을 뿐이지 ‘정치적 탄핵’은 이미 이뤄진 셈이다. 문제는 이런 사태를 수습할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서 사실상 유폐(幽閉) 상태에 들어가 버렸고,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은 서로 책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역사서에 따르면 왕조가 망할 때 다음과 같은 징조가 있다고 한다. ① 경제가 파탄 나면서 민심이 이반한다. ② 충신이 제왕의 곁을 떠난다. ③ 어리석은 신하들 사이에 권력을 둘러싼 암투가 횡행한다. ④ 다가오는 위기를 보지 못한다. ⑤ 우유부단한 왕은 간신들에게 정사를 맡긴 채 부질없는 일에 탐닉한다. ⑥ 시중에 온갖 풍문이 꼬리를 문다. ⑦ 뜻있는 사람들은 백성들과 함께하면서 후일을 도모한다. 지금의 상황과 결코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주장도 있는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이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지 암담하기만 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사과 성명 발표 이후 참모들에게 “저 때문에 힘드시죠”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은 박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 지난해 말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것인데 박 대통령은 이런 지식인과 언론의 경고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큰 재해 1건이 발생하려면 29번의 작은 재해와 300번의 사소한 사고가 발생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처럼 그 징조는 정권 초기부터 있었다. 불통을 지적하며 대면(對面)보고를 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지적했지만 “꼭 대면보고 해야 하나요”라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지금 와서 보면 최순실 씨가 모든 보고를 다 해주는데 굳이 장관이나 참모들을 만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대통령의 독선과 독주를 누군가가 제어해야 했지만 한마디라도 충언을 한 참모들은 일찌감치 내쳐졌다. 그 자리는 최순실이 추천한 간신(奸臣)들로 가득 차 버렸다. 그들은 조폭 영화에 나오는 부하들처럼 대통령이 시키는 일만 하고 반대자들을 공격하는 일에 몰두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민정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을 빼놓을 수 없다. 김 전 실장은 최 씨의 국정농단이 극에 달했을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비서실장을 하면서 ‘정윤회 문건 사건’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최 씨의 행태를 충분히 인지할 위치에 있었다. “연설문 개입을 전혀 몰랐다”는 그의 주장은 책임 회피일 뿐이다. 우 민정수석은 이번 사건의 발단이 본인에게서 비롯됐는데도 “국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김재원 정무수석이 제안한 비서진 일괄 사퇴도 반대했다고 하니 뻔뻔하다. 안종범 수석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현재 나온 ‘합리적 의심’을 할 만한 정황을 보면 경제수석·정책조정수석이 대기업을 압박해 돈을 걷는 수금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의 컨트롤타워인 안 수석이 한낱 비선 실세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는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 정의(正義)의 마지막 보루인 검찰도 간신 역할을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검찰 수뇌부에 한 명이라도 올곧은 ‘간신(諫臣)’이 있었다면 정권에 경고등을 켤 수 있었을 것이다. 1997년 환란(換亂) 당시 재정경제원이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말만 하지 말고 제대로 경제 상황을 주시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었듯이, 오직 승진과 출세에 눈먼 검찰이 정권의 오만을 키운 책임이 크다.

대통령 호위무사 역할을 한 친박(親朴)의 행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헌법 위에 의리’라면서 청와대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이면 공격하고 비난을 일삼았던 그들의 행태가 대통령의 눈을 더 멀게 한 원인이다. 그럼에도 이정현 대표는 “나도 연설문 쓸 때 지인의 도움을 받는다”면서 동떨어진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이 또한 간신이다.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몰락을 자초한 요승 라스푸틴, 박정희 시절 국민 100만 명 정도는 죽어도 괜찮다고 한 차지철 경호실장 유의 간신이 거론되는 상황과 비슷하다. 지금 광화문 광장에 석고대죄(席藁待罪)할 신하 한 명 없는 박 정권의 민낯을 보기가 개탄스럽다.
이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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