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영 워싱턴 특파원

오는 8일 미국 대선을 엿새 앞둔 2일 한·미 양국에서 공교롭게도 여성들 때문에 정국이 혼란스럽다. 한국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이 불거지면서 최순실(60)이 여론의 최대 관심사에 올랐다면, 미국에서는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진 후마 애버딘(40)이 막판 최대 변수로 떠오른 클린턴의 사설 이메일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에 입수·수정하는 데 관여하면서 대통령 하야론까지 언급되는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다. 애버딘은 음란 문자를 주고받는 ‘섹스팅’이 발각된 전 남편 앤서니 위너 전 하원의원과 함께 사용한 컴퓨터에서 클린턴의 사설 이메일 서버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에 최대 걸림돌로 떠올랐다.

두 여성 간에는 닮은 점이 적지 않다. 먼저, 각각 박 대통령, 클린턴과의 오랜 인연으로, 사실상 ‘가족’과 다름없다. 최순실은 1979년 새마음대학생 총연합회 임원으로 만난 박 대통령과는 거의 40년 지기다. 애버딘이 클린턴을 처음 만난 것도 20대 때로, 조지워싱턴대 학생이었던 1996년이었다. 특히, 클린턴은 과거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첼시 외에) 또 한 명의 딸이 있다면 그건 후마”라고 밝혔을 정도다. 유력한 실세로 꼽혔던 남성과의 이혼도 닮은꼴이다. 최순실은 한때 박근혜정부의 실세로 통했던 정윤회 전 새누리당 대선 후보 비서실장과 이혼했고, 애버딘도 2010년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던 위너 전 의원과 결혼했다가 지난 7월 이혼했다.

물론 비선(秘線)인 최순실과 캠프 선대위 부위원장이라는 공식 직함이 있는 애버딘과는 큰 차이가 있다. 불법과 합법의 차이다. 또 애버딘은 최순실과 달리 권력을 악용하거나 이를 통한 부정 축재를 하지도 않았다. 최순실이 박 대통령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는 반면, 애버딘은 클린턴의 복심을 잘 아는 비서에 더 가깝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중론이다. 특히 문제가 된 이메일 역시 애버딘이 클린턴 국무장관 부비서실장으로 일하면서 사용했다는 점에서 최순실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 본질적인 공통점은 이들의 ‘공문서 유출’에 대한 무감각과 이에 대한 부실한 해명이다. 최순실 의혹사건의 핵심이 대통령 연설문과 보고서 등이 적법 절차 없이 유출됐다는 점인 것처럼, 애버딘도 국무부가 금지하고 있는 사설 이메일 서버 구축에 적극 개입했고 실제로도 남편과의 공용 컴퓨터에서 수천 건의 이메일을 작성했다.

또 최순실이 국가정보 보안 사항 유출에 대해 “몰랐다”고 발뺌했듯이, 애버딘도 “전 남편 컴퓨터에 내 메일이 있는지 몰랐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들의 무감각을 키운 것은 아마도 박 대통령과 클린턴의 ‘묵인’이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도 공문서 유출이 위법이라는 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클린턴도 지난 6월 미연방수사국(FBI) 수사에서 “사설 이메일 사용이 문제인지 몰랐다”고 해명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위기는 박 대통령과 클린턴 본인이 자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선 의원을 지낸 박 대통령도, 영부인·상원의원·국무장관으로 이어지는 공직생활 30년의 클린턴도 친인척·측근 관리가 권력 정당성의 기초라는 점을 간과한 셈이다.

한·미 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번 사태의 결론이 어디로 향할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권력자에게는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는 것. 이번 최순실 의혹사건으로 박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이 예고된 상황에서 내년 12월 대선을 생각하는 예비 대권 후보들은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내 등잔 밑은 어떤지, 그리고 혹시 등잔 밑에 ‘제2의 최순실’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든 것은 아닌지. 당장 내년 대선에서 클린턴처럼 다 잡은 고기를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boyoung22@
신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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