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된 운동권’ 이진경 교수…‘불교를 철학하다’ 출간

철학자 이진경 한국과학기술대 교수가 불교에 관한 책‘불교를 철학하다’(한겨레출판 휴)를 펴냈다. 1980년대 학생 신분으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사사방)을 써 학계와 운동권의 ‘사구체(사회구성체) 논쟁’을 불붙게 했고, 1990년대 이후 주로 ‘차이의 철학자’ 질 들뢰즈 등 서구철학에 대한 연구와 20여 권의 저술, ‘수유너머’지식공동체 활동 등을 해온 ‘뼛속부터’ 유물론자인 이 교수가 종교에 관한 책을 낸 것이다.

이 교수는 9일 문화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무아(無我)의 철학’ 없이는 ‘차이의 철학’이니, ‘공동체’니 하는 게 모두 공허하게 될 것임을 직감해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와의 만남을 “‘사건’으로 다가왔다”고 표현했다.

그는 “유물론자였으니 종교에 대한 관심이 없는 편이었지만, 기독교나 여타 종교가 신을 전제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불교는 신이 없고, 사람들 삶에 대한 제안이나 가르침을 담고 있어 일종의 윤리학처럼 관심은 있었다”고 말했다. 불교를 다시 보게 된 계기는 지식공동체 활동을 하던 10여 년 전 후배들과 심한 갈등을 겪으면서.

“나는 후배들을 생각한다고 했지만 후배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있었을 것이다. 갈등과 분란이 있었다. 당시 번민을 없애려 성철 스님 책을 보고 혼자 참선도 해보았는데, 어느 날 관악산에서 산책을 하다 생면부지 노인에게 심한 욕설을 들었다. 다가가 보니 눈의 초점을 잃은 노인의 혼잣소리였는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참선을 한다고 앉아 후배들을 욕하고 있었는데, 내가 저 꼴이구나. 그 자리에서 돌아와 미용실에 가서 삭발을 했을 정도로 충격을 경험했다.”

그는 불교의 핵심이 ‘무아’이고, 실체는 없으니 아상(我相)을 내려놓으라는 것인데, 그 말이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사건’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당시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과 공동체를 말했지만,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남의 얘기가 안 들리고, 차이를 수용할 수 없으니 파시즘적인 공동체 말고는 공동체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불교철학이 공동체나 ‘차이의 철학’과 부합한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책은 연기, 무상, 인과, 무아, 보시, 중생과 무명 등 12연기까지 불교의 기본적인 25가지 개념을 따라가며 펼쳐진다. 곳곳에서 들뢰즈의 사상과 교직되며 불교가 새롭게 다가온다. 그러다 보니, 어렵다는 불교철학과 들뢰즈 철학을 되레 쉽게 이해하게 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독자들은 얻을 수 있다.

그는 불교의 ‘연기적 사유’에서, 아주 달라 보이는 것에서도 ‘동일한 것’을 찾는 동일성의 사유와 반대로 아주 비슷한 것에서도 ‘차이’를 아는 차이의 사유를 본다. “공동체가 파시즘적 동일성만 요구하면 폭력이 되고, 반대로 ‘각자도생’은 개인주의의 성행과 공동체가 없는 힘든 삶을 가져온다. 불교의 ‘무아’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윤리학적 가르침을 준다.”

‘무상’의 통찰은 ‘차이의 철학’으로 얼굴을 내민다. “우리가 아는 지식은 ‘무상한 세계’를 어느 순간에 정지시켜놓고 거기에 개념이나 이론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없고 유용하지만, 고정시키는 순간부터 이미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무상을 자각할 때만 내 생각과 판단을 세상의 변화에 비추어 끊임없이 바꾸어갈 수 있다.”

‘자비’와 ‘보시’에서는 현대철학이 아직 이르지 못한 윤리학적 실천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그는 “이 책에 소개된 불교는 내가 공부했던 현대 과학이나 철학, 예술은 물론 우리가 사는 사회와 삶에 의해 침윤과 혼합을 통해 변성된 불교일 것”이라며 “불교의 오랜 역사가 연기적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갱신해온 것처럼, 불교가 어떤 현대 철학보다 더 현대적인 철학으로서, 어떤 윤리보다 더 현대적인 삶의 방법으로서 스스로를 불사르고 재탄생하는 사건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요즘도 참선이나 위파사나, 절 수행 등을 해오고 있다는 이 교수는 “수행을 좀 했다는 분들이 경험했다는 삼매를 아직 느껴보지 못했으니, ‘이 생에는 틀린 것 같다’”며 웃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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