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보호받아야 할 존재임에도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학대받고 열악한 환경에서 신음하는 아이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정부가 정부 재량지출 삭감 지침에 따라 아동에 대한 예산도 깎으면서 저소득층 어린이 등에 대한 지원도 더욱 열악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아동에 대한 ‘사각지대’를 밝혀주며 사회의 ‘빛’이 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어린이들을 뒤에서 조용히 돕고 있는 기부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부자’도 아니고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이들의 작은 ‘따뜻함’은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햇볕을 비춰주고 있다. 문화일보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세상의 그늘진 곳을 비추는 이들의 ‘작지만 큰 이야기’를 연재한다.
‘5억 원보다 값진 5000원.’
팔과 다리, 사지의 근육이 점점 위축돼 간다. 운동신경 손상으로 팔다리 근육이 점점 굳으며 근력저하 현상도 나타난다. 신생아 6000명∼1만 명당 한 명꼴로 발생한다는 ‘척수성 근육위축’(Spinal muscular atrophy)은 척수신경이나 간뇌의 운동 세포가 서서히 파괴돼 나타나는 유전성 운동신경질환이다. 근육약화로 인해 얼굴 근육 기능이 저하되고, 혀 근육도 수축되는 증상이 이어진다. 근본적인 치료법도 없는 난치성 희소질환이다.
척수성 근육위축증을 앓고 있는 천안 나사렛대 특수체육학과 박승철(19) 씨는 보치아(Boccia) 운동선수다. 보치아는 표적구에 공을 던져 표적구에 가까운 공의 점수를 합해 승패를 겨루는 경기다.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과 운동성 장애인만 참가하는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경기종목이다. 이번 브라질 리우패럴림픽에서 우리나라 정호원 선수가 혼성 개인전에서 그리스 선수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냈고, 유원종 선수도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씨는 현재 국내 랭킹 6위다. 3위까지 국가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연습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근육이 위축되고 있어 정교함이 필요한 단거리 경기에는 강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팔 힘이 필요한 장거리 경기에는 약점을 갖고 있어 이 부분에 연습을 집중하고 있다.
본인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박 씨는 2년째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한 기부활동을 해 오고 있다. 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홀어머니가 누나와 남동생, 박 씨를 책임지고 있는 어려운 가정형편이다. 더구나 누나와 동생 역시 박 씨와 같은 병을 앓고 있어 홀어머니가 직장을 다니면서 3남매의 병시중까지 해야 하는 매우 힘든 상황이다.
박 씨가 처음 어린이 후원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14년 겨울 즈음부터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오던 중에 우연히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진행하는 캠페인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
박 씨는 “평소 막연하게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는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캠페인 부스 선생님을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 사연을 듣고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박 씨는 적은 금액이지만 이때부터 용돈을 아껴 매달 재단에 후원금을 내고 있다. 박 씨는 천안시 장애인체육회에서 지원해 주는 약간의 지원금과 장애인연금 등으로 매달 70만∼80만 원가량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돈으로 집안 생활비에 보태야 하는 것은 물론, 본인의 용돈까지 해결해야 하는 처지. 빠듯한 지원금이지만 박 씨는 자신의 용돈에서 매달 5000원씩 불우 아동들을 지원하는 데 쓰고 있다. 박 씨는 “정말 ‘쥐꼬리’만 한 기부금이지만, 용돈을 좀 더 아껴 5000원을 더 낼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쥐꼬리’만 한 기부금이 충분치 않다고 느낀 박 씨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골몰했다고 한다. 하지만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그로서는 후원행사 등에 참여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박 씨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에게 힘을 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부’였다.
박 씨는 얼마 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으로부터 백혈병을 앓고 있는 누나에게 골수이식을 해주기 위해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민수(3) 이야기를 듣고, 민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민수야, 형도 척수성 근육위축증이라는 희소병을 앓고 있단다. 힘들지만, 보치아라는 운동을 하며 국가대표의 꿈을 키우고 있고 지금은 나사렛대 특수체육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다니고 있어! 올해 성년이 됐는데, 그만큼 나 자신에게 책임을 지고 잘 살아가고 있단다. 너도 형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내서 훌륭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항상 응원하고 널 위해 기도할게. 민수 파이팅!”
민수에게 보낸 그의 메시지는 바로 그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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