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8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됐다. 미국 대선 결과를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세계의 경찰’이자 최대 경제대국의 대통령 교체는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질서에도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권이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새롭게 수립할 대외정책 방향에 따라서 동북아 국제 정세 및 한반도 국제 환경은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고립주의를 시행할 미국과 새롭게 관계를 설정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 선거 기간에 트럼프는 “미국은 동맹국들에 엄청난 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정작 미국은 빈털터리 상태”라고 주장하면서 미군 주둔 비용 전액을 부담하지 않는 동맹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철수도 고려해야 하며, 한국과 일본의 자주국방을 적극 지지하고 필요하다면 핵(核) 보유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면 기존의 동맹관계를 사업가적 판단 기준인 재정적 손익(損益)만으로 판단해 동맹 상대국에 재정 부담을 일방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고립주의적 외교 방향은 집권 초기에 아시아 지역을 포함해 미국의 대외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개념이 될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미국 공화당 정권은 1972년 리처드 닉슨의 방중 이래 아시아 정책에서 중국을 중시한다. 트럼프의 경우에 중국에 대한 비판은 경제 문제에 집중됐다. 대선 기간에 트럼프는 당선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대미 지적재산권 위반 현황과 부적절한 수출보조금 지불 현황을 공개하며 무역 개혁안을 받아들이도록 중국을 압박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대국굴기 경향을 보이면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기존 해양 질서에 도전하려는 중국에 대해 안보 측면의 언급이 없는 것은 대중(對中) 전략적 국익 판단이 아직 서지 않은 때문인 것 같다. 일본은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트럼프의 대중 정책에 대해 우려하며 중국에 대한 일본과 미국 새 행정부의 인식 공유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트럼프가 강조한 통상정책은 아시아 국가들에 영향을 미칠 또 다른 측면이다. 트럼프는 자유무역협정(FTA) 및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포함한 자유무역이 미국의 노동 환경을 악화시키며 실업자를 양산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보유무역 정책 선언은 세계화에 의해 경제 환경이 열악해진 미국의 전통적 제조업 지역인 중서부의 유권자 지지를 끌어들인 큰 요인이었다. 우리도 가입 의사를 표명한 TPP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해 12개국이 8년간의 교섭 끝에 올해 2월에 서명했으며 각국 의회의 비준 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TPP를 공개적으로 반대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 공화당이 지배하게 된 미 의회에서 TPP 비준은 더욱 어렵게 됐다. 일본 정부는 올해 조기 비준을 통해서 오히려 미국에 재교섭의 빌미를 주지 않고 미국 의회 비준을 압박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트럼프 당선에 따라 일본은 이 전략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미국의 요구를 대폭 받아들이는 재협상을 하거나, 아니면 미 의회 비준이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상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안보 및 통상 측면에서 아시아 국가들에 단기적으로 순응(順應)하기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더라도 대다수 국가는 비판하기보다는 미국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미국과의 동맹 강화가 남중국해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부근의 중국과 충돌 및 북한 핵미사일 문제,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문제를 해결할 외교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미·일 공동 프로젝트나 전략대화를 제안하는 등 일본이 아시아에서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는 사실을 미국 정계 및 학계에 계속 주지시키는 공식 및 비공식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대선 기간에도 워싱턴DC에 소재한 정치 컨설팅 회사, 트럼프 외교·안보 참모들을 도쿄(東京)에 초청해 대선 후 미·일 관계에 대한 여러 차원의 논의를 진행했다.

우리도 일본의 발 빠른 대응을 지켜보기만 할 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한·미 관계를 어떻게 재정비할지 적극적으로 준비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면한 국정 혼란을 하루바삐 수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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