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사랑을 못한 열등감 / 문정희 지음 / 문예중앙

“만남은 불꽃과 같아서 치명적인 화상을 남긴다. 눈부신 예술가들과의 만남, 자유가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도시와 우울한 습기 자욱했던 정신들과의 만남, 그 모든 만남은 사람의 생을 전환하는 치명적인 전율이 되기도 한다.”

1969년 등단 이후 47년간 15권의 시집을 낸 저자에게 문학은 자신의 삶 자체였다. 그는 ‘툭 하면 짐을 싸고 어디론가 떠나기’를 좋아했다. 낯선 공간에서의 고독과 자유를 즐겼다. 유목민 같은 삶 속에서 그는 시작(詩作)을 위한 원동력을 얻었다.

책은 예술의 시혼(詩魂)을 향한 저자의 사랑 고백이다. 자유를 찾아 떠돌았던 시간과 공간, 그때 느꼈던 짜릿한 감각 그리고 그를 사로잡았던 예술가들과의 인연을 담았다.

저자는 미당 서정주가 아끼던 제자였다. 그는 여고 3년이던 1965년 미당을 처음 만났다. 동국대 캠퍼스에서 열린 전국 고교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을 때 심사위원이 미당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동국대 국문학과에 진학해 미당과 사제의 연을 맺었고, 그 인연은 2000년 12월 24일 미당이 타계하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그는 “미당 선생님이 떠난 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살아있는 시인”이라며 “비애와 절망과 뼈아픈 시대를 살며 모국어의 절정을 단숨에 높인 시의 귀신(鬼神)”이라고 추모했다.

1970년 ‘사상계’ 5월호에 실린 시 ‘오적’으로 옥고를 치렀던 김지하 시인과도 인연이 깊다.

당시 저자도 사상계에 자작시 ‘땅’을 실을 예정이었으나 군부정권에 의해 잡지가 폐간되는 바람에 시는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 뒤 김 시인이 감옥에서 출소한 후 시집 ‘황토’ 출간 기념회를 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김 시인은 자신의 모친에게 저자를 소개하며 “나의 애인”이라고 했단다.

저자는 김 시인에게 일종의 부채(負債) 의식을 갖고 있다. 김 시인이 감옥을 드나드는 동안 자신은 부박한 삶에 덜미 잡혀 있었고, 민족과 조국을 말하는 데 서툴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동료 투옥 작가들이 감방을 뒹구는 동안 ‘참회시’ ‘소’ ‘정월일기’ 등을 쓰며 부당한 억압을 토로했다. 또 그 후 몇 년에 걸쳐 시 ‘아우내의 새’를 썼다. 아우내의 새는 유관순 열사의 자유혼을 그린 장시다. 진실을 말하고 죽음과 목숨을 맞바꾼 순열한 정신을 알리고자 했다. 책의 제목은 바로 여기에서 따왔다.

저자는 이 밖에도 파블로 네루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프리다 칼로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의 만남과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중간중간 저자의 주옥 같은 시는 보너스 같다. 그는 “자유혼을 찾아 방황한 끝에 결국 내가 마주한 것은 나와의 만남이 아니었을까. 나의 열정과 근원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이 책은 작지만 나의 생을 전환한 불꽃”이라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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