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덕 부산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30일 부산 동래구 온천동 연구실 인근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퍼팅을 하고 있다.
임정덕 부산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30일 부산 동래구 온천동 연구실 인근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퍼팅을 하고 있다.
임정덕 부산대 명예교수

임정덕(71) 부산대 명예교수는 고희를 넘긴 요즘 회춘했다며 입이 귀에 걸려 있다. 물론 다 골프 덕분이란다.

임 교수는 “공직 신분(부산대 교수) 탓에 마음 놓고 골프를 즐기지 못했지만 이젠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왔기에 눈치 볼 필요 없어 볼이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 교수의 베스트 스코어는 85타 정도. 임 교수는 “공직자이기에 공이 좀 맞을 만하면 눈치부터 봐야 했기에 꾸준히 골프를 즐길 수 없었고 전성기도 모른 채 70세를 넘기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0일 부산 동래구 온천동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은행 지점 건물 4층에 자리한 연구실은 임 교수의 40년 손때가 묻은 책들과 연구논문들로 가득했다. 임 교수는 부산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얼마 전까지 한국남부발전㈜ 상임감사를 지냈다.

미국 유학 시절 골프를 시작했다는 임 교수는 “최근 2년 동안 기량이 부쩍 늘었다”며 “특히 친구들보다 거리가 더 나가는 맛에 산다”고 자랑했다. 예전에 싱글에, 장타라며 목에 힘을 주던 친구들은 요즘엔 임 교수 앞에서 안절부절이란다. 자신들보다 더 멀리, 똑바로 나가는 임 교수의 달라진 골프에 놀라고 당황하기 때문. 임 교수는 “친구들이 ‘너, 요즘 물올랐다’며 나를 예우한다”고 귀띔했다.

비결은 오랫동안 함께했던 테니스. 임 교수는 “골프와 테니스는 힘을 뺀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20대 때부터 테니스 코트를 찾았고, 그래서 골프와 테니스를 병행했다. 지금도 하루에 테니스 3게임을 소화할 정도란다. 임 교수는 “테니스를 하다 우연히 터득한 이치에 따라 스윙을 하니 드라이버 비거리가 더 나갔고, 스코어도 자연스레 좋아졌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180m도 나가지 않던 드라이버 비거리가 200m를 거뜬히 넘긴다. 잘 맞으면 210m까지 보낸다.

또 다른 비결은 LPGA투어 중계방송 시청이다. 프로 골퍼들의 스윙을 스스로 이해하면서 스윙을 다듬는다. 잊고 있던 아주 기본적인 부드러운 그립 잡기, 체중 이동 등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 너무나 간단하고 단순한 걸 그동안엔 몸에 익히지 못했다.

임 교수는 부산고와 서울대(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우연히 찾아온 해외연수 기회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로 유학, 5년 공부끝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윈게이트대에서 3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1984년 귀국한 임 교수는 부산대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명성을 날렸다. 산업경제, 미시경제, 지역경제 등을 가르쳤다.

윈게이트대 경제학 교수 시절 프로를 지망하던 제자가 그의 골프 스승이 됐다. 그 제자는 “통계학 과외를 해주면 교수님에게 답례로 골프 레슨을 해주겠다”며 ‘거래’를 제안했다. 그 학생은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소속 리그에 출전할 만한 실력을 갖췄었다. 연간 120달러를 내고 윈게이트대 근처 9홀 퍼블릭골프장 회원이 된 임 교수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골프를 즐길 수 있었다. 레슨코치를 자처한 학생, 대학에서 강의를 듣던 학생들과 라운드를 했지만 주말엔 교회를 다니느라 평일 한가한 시간에 골프장을 찾았고, 그래서 ‘나 홀로’ 라운드를 자주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임 교수는 골프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회원권이 없었고, 초임 교수 월급으로 골프장에 다니는 건 무리였기 때문. 게다가 당시만 해도 교수가 골프한다는 걸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시절이었다. 자가용이 없었기에 가끔 참가하는 골프장 모임엔 택시를 이용했다. 몇 차례 골프장을 기웃거렸지만 꾸준히 즐기기란 쉽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골프에 소홀해졌다. 그러다 1988년 한 기업이 설립한 재단의 후원을 받아 미국 하와이대로 파견을 나갔고 미국에 1년간 머물면서 다시 골프와 친해졌다. 현지 교민, 동료 교수들과 골프장 나들이를 할 수 있었으며, 안정적인 80대 스코어에 진입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임 교수는 외환위기 시절 회원권을 사려고 계약금을 냈다가 구설에 오를지 않을까 걱정돼 다음 날 취소한 적도 있다.

10여 권의 책을 펴냈던 임 교수는 자신의 경험담을 묶어 바람직한 공직자의 처세를 담은 ‘적극적 청렴’을 최근 출간했다. 임 교수는 “안 주고 안 받는 것은 소극적 청렴도를 지향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골프를 예로 들었다. 임 교수는 “골프는 인생의 거울과도 같다”며 “내 스코어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 왔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골프는 스코어 운동이기에 정확하고 정직해야 하지만, 그러다 보면 ‘보기 플레이’를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골프 스코어를 정확히 적지 않으면 업무 역시 대충대충 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그래서 골프는 가장 짧은 시간에 상대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라고 설명했다.

임 교수의 목표는 일단 보기 플레이어가 되고, 확실하게 88타를 유지하는 것. 임 교수는 “건강에 좋다는 생각에 카트를 타지 않고 걷는 편”이라며 “후반에는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운동으로 생각하면 절로 힘이 난다”고 말했다.

부산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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