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드라마’… ‘옷’으로 말한 그들
◇ 극찬받은 미셸, 완판시킨 이방카
트럼프와 클린턴의 대선 캠프에서 패션으로 가장 화제가 된 두 인물이다. 한·미 정상회담 때엔 한국계 디자이너 두리 정의 드레스를 입어 주목받았던 미셸은 늘 옷으로 반향을 일으켜 왔다. 평소 젊은 디자이너들의 옷을 입어 그들을 응원해온 미셸은 전 세계 패션계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패션과 철학, 그리고 정치적 메시지를 엮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그의 옷은 클린턴의 랄프 로렌 슈트보다 훨씬 빛났다.
미셸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파란색 원피스를 입었다. 이 원피스는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패션계에 지금까지도 회자될 만큼 의미가 있다. 디자이너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런웨이’의 최연소 우승자 크리스천 시리아노가 제작한 것으로, 시리아노는 지난 뉴욕패션위크에서 통통한 모델을 런웨이에 세우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유명하다. 그는 늘 “우리 엄마와 누나같이 평범한 여성들이 모두 아름다운 옷 입기를 즐겼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고 역설해 왔는데, 그런 시리아노의 옷을 입음으로써 미셸이 ‘통합’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했다는 거다. ‘정치적 옷 입기의 달인’이라고까지 불리는 데엔 이유가 있다.
그러나 미셸의 옷은 전문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지만, 민심을 뚫고 들어가기엔 부족했다. 오히려 마음을 훔친 건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의 드레스다. 유명 모델 출신인 이방카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브랜드 ‘이방카 트럼프’의 연한 핑크 드레스를 입었는데, 메이시스 등 주요 백화점에서 동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가격도 134달러로 저렴해 완판 기록을 남겼다. 전문가가 칭송한 패션(미셸)과 대중이 열광하는 패션(이방카)은 이번 대선 결과와도 닿아 있다.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은 옷보다는 예쁘고 대중적이며, 친근한 걸 원하는 민심을 엿볼 수 있었던 지점이다.
◇ 트럼프의 ‘아재 패션’
똑같은 상표인데, 핏(몸에 붙는 정도)은 영 다르다. 버락 오바마와 트럼프가 아끼는 이탈리아 고급 브랜드 브리오니다. 한 사람은 날렵한 슈트 발로 유명했고, 한 사람은 펑퍼짐한 인상을 풍겨 아재 패션이라 불렸다. 이제 적어도 4년 동안 트럼프의 아재 패션을 봐야 하는데 이 패션이 트럼프의 승리에 일조했다는 분석이 많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헐렁한 차림이 대범하고 거침없는 성격을 부각시켰다고 말한다. 깔끔하게 세팅된 오바마의 옷과 달리, 옷에 신경을 쓰지 않고 일하는 성실한 남자, 털털한 아저씨, 넉넉한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것. 보수층을 집결시키기 위해 꼭 끼는 넥타이는 반드시 챙겼다. 성조기가 떠오르는 블루와 레드 컬러 넥타이를 번갈아 착용해 보는 이로 하여금 애국심을 느끼게 했다는 것. 오바마가 연설할 때 노타이에 셔츠 단추를 하나 풀고, 또 양쪽 소매를 걷어붙이는 것과도 대조된다.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 대선연구팀은 “트럼프는 노타이가 유행해도 언제나 넥타이를 맸다. 또한 좋은 옷(브리오니 슈트)을 형편없이 입어, 거침없는 이미지를 돋보이게 했다”고 분석했다.
◇ 독이 된 클린턴의 랄프 로렌 사랑
클린턴은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랄프 로렌의 팬츠슈트(바지 정장)로 ‘강한 여성’ 이미지를 앞세웠다. 뉴욕의 한 이민 가정에서 가난하게 자란 디자이너 랄프 로렌은 인생 자체가 아메리칸 드림이다. 클린턴은 브랜드에 담긴 성공신화를 옷으로 표출한 것인데, 패션계에선 만약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랄프 로렌이 의상 담당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로렌에게 그런 기회는 생기지 않았지만.
클린턴은 화이트, 블루, 레드, 블랙 등 블라우스와 재킷 그리고 바지를 모두 단색으로 맞추는 코디 전략을 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성조기가 연상되는 블루와 레드 컬러를 자주 입었다. 화이트는 여성의 참정권을 기념하며, 투표를 독려하는 메시지였는데, 클린턴 지지자들이 선거를 앞두고 ‘화이트를 입자’며 트위터에서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화이트 이펙트’는 끝내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클린턴은 그동안 남미 출신 유명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1932∼2014)의 옷을 즐겨 입었다. 그가 사망하고 과연 어떤 옷을 입을지가 패션계의 관심사였다. 뉴욕타임스는 “랄프 로렌의 세련된 라인이 클린턴과 매우 잘 어울린다”면서도 “랄프 로렌은 지금 수천 달러에 육박하는 옷으로, 대부분의 유권자가 살 수 없다. 하이패션 디자이너와 일하는 후보자가 과연 모든 국민을 대변할 수 있겠냐는 반대 여론을 만들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러면서 보다 저렴한 기성복 ‘띠어리’를 추천하기도 했다. 이는 대선 결과 분석과 흡사하다. 부자, 엘리트 등 기득권 세력의 이미지를 벗어던지지 못한 점이 클린턴의 주요 패인 중 하나로 꼽힌다.
◇ 아무 생각 없었던 멜라니아 트럼프
첫 동구권 출신 퍼스트레이디가 된 멜라니아 트럼프는 첫째 부인의 딸인 이방카와 아홉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모델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지성까지 겸비한 이방카와 달리 연설문 표절 등으로 구설에 오르는 등 ‘백치’ 이미지가 강했다. 특히, 대선 TV 토론회장에 입고 나왔던 구찌의 핑크 블라우스 ‘푸시 보(pussy bow)’로 문제가 됐다. 푸시 보는 목둘레에 묶어 연출하는 리본을 뜻하는데, 푸시는 여성의 성기를 일컫기도 한다. 당시 트럼프는 이 단어를 언급한 음담패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남편이 대통령 후보인데 부인이 아무 생각 없이 옷을 입는다” “일부러 뒤틀린 유머를 보여준 듯하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전자든 후자든 결국 이 옷 주인의 남편은 미국 대통령이 됐다. 클린턴이나 미셸처럼 ‘생각 많은’ 옷차림이 무색해졌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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