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브라질의 상파울루에서 열린 세계문학축전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올봄 로스앤젤레스에서 간행된, 내 영역(英譯)시집에 대한 서평(書評)이 미국 내의 몇 개 정기간행물에 실린 것이 계기가 되어 초청을 받은 것이다.
세미나에서의 발표와 인터뷰, 시 낭독회 그리고 상파울루대학에서의 특강 등 주요 행사들은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귀국길.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면서 공항의 면세점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았다. 체류 중에 쓰다 남은 브라질 지폐 몇 푼과 동전들이 아직 주머니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만5000원쯤 되는, 귀국해서는 아무 쓸모 없는 이들 화폐를 마지막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이 금액에 맞는 그 무엇을 사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상품들을 눈여겨보던 그때, 뇌리에 문득 떠오르는 얼굴 하나가 있었다. 나의 브라질 출장을 위해 바쁘게 심부름을 해주던 번역원의 한 여직원이 생각났던 것이다. 내 논문을 포르투갈어로 번역하고 주최 측에서 요구하는 여러 가지 서류들을 챙기고, 항공편을 예약해 주고, 나 대신 그곳과 수차례 전화, 메일, 팩스 등으로 연락해서 나의 브라질행을 깔끔하게 성사시켜주었던 고마운 직원이다. 나는 그 여직원에게 줄 선물 하나를 고르기로 했다. 우리 돈으로 1만 원이 좀 넘는 초콜릿 한 상자.
귀국해서의 일이다. 내 짐보따리를 정리하던 아내가 불쑥 물었다. “이건 뭐예요? 다 늙은이가 웬 초콜릿을….” 내가 그 여직원에게 줄 선물이라고 설명해주었더니 아내는 눈을 위로 치켜뜨면서 한심하다는 듯 쏘아붙였다.(아마 자기에게는 아무 선물도 준비해 오지 않은 것이 서운해서 더 그랬을지 모른다)
“당신 김영란법도 몰라요?”
“그게 어때서?” 하며 찬찬히 그의 말을 들어본즉, 내가 브라질에 체류하던 동안 국내에서는 ‘김영란법’이라는 것이 효력을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약칭 청탁금지법인데, 더 흔하게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그 법에 따르면, 유관 기관의 임직원에겐 그 누구도, 그 어떤 선물을 해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영란법을 해설한 정보들을 인터넷 이곳저곳 두루 찾아 읽어보았다. 그 취지와 원칙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공감도 갔다. 그러나 적용에 관한 세부적 사항만큼은 알쏭달쏭했다. 다만, 확실하게 기억되는 것은 식사 대접은 3만 원, 선물은 5만 원, 경조사비는 10만 원 이하라는 규정. 따라서 이 규정대로라면 1만 원 내외의 초콜릿 한 상자는(5만 원을 넘지 않았으므로)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내는 왜 그렇게 단호히 반대하는 것일까?
그로부터 며칠 후, 신문에 제법 큰 기사 하나가 떴다. 드디어 당국에 김영란법 저촉 제1호 신고가 들어 왔는데, 어느 대학에서 한 학생이 자판기에서 캔 커피 한 통을 사 가지고 뚜껑을 따 교수에게 드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학생이 이를 김영란법 위반으로 고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수가…. 그렇다면 1만 원짜리 선물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아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 초콜릿 한 상자를 내 서재의 테이블 한구석에 처박아두고 있다.
아마 우리 국민 중 많은 분이 지금 나 같은 처지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도되는 매스컴의 여론을 살펴보면, 김영란법에 호의적이지 않은 내용도 적잖은 것 같다. 더러는 이 법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과장해서 비판하기도 하고, 또는 은연중 폐기를 주장하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며, 또 더러는 이 법의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모두는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법의 시행과 그 건강한 정착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여러 나쁜 관행을 혁명적으로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삶의 급격한 변혁에는 그에 따르는 물의와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고 올바른 공동체의 구현을 위해 지불해야 할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시행상의 부작용은 앞으로 그 점진적인 보완을 통해 결국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 법을 한 차원 더 강화해 차제에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경조사와 관련한 비리 또한 청산해 버리기를 제안한다. 가령, 친족들(그 범위는 아마도 법으로 정해져 있겠지만)을 제외한 그 누구도 경조사에 축의금이나 부의금 같은 금품 수수를 일절 금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버린다면 어떨까? 사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 이 같은 관행을 즐겨 고수하는 건 아니다. 체면 때문에, 이해관계 때문에, 또는 상대방의 갑질이 무서워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경우 역시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우리네 각박한 서민들의 생활에서 경조사에 바치는 시간과 경비는 누구나 알고 있듯 이미 그 도를 넘어선 지 오래 아닌가.
젊은 시절, 초빙교수로 미국에 체류하던 동안 그곳 우리 교민들에게 고국이 아닌 미국에 살면서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여성들은 대체로 시댁 친척들을 만나지 않아서라 했지만, 대다수의 남성은 한마디로 경조사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라고 대답했다. 이제는 우리도 좀 솔직해져야 할 때가 아닐까?(참고로 필자는,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었고 슬하의 삼 남매 중 두 자녀가 아직 미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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