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죄를 졌다’면 성실하게 수사에 임해야 한다.

검찰에 출석하면서 ‘죽을죄를 졌다’, 용서해 달라던 것과는 정반대 모습을….

지난여름 ‘국민은 개·돼지’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죽을죄를 지었다”며 사과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요. 가을이 되자 이번엔 40여 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 이권을 챙겨온 최순실 씨가 검찰에 출두하면서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수사가 계속될수록 드러나는 사실들은 읽기에도 벅찰 정도입니다.

두 인용문의 ‘졌다’는 ‘죄를 저지르다’는 뜻의 동사 ‘짓다’를 활용한 ‘지었다’로 써야 합니다. ‘짓다’에는 무리를 짓다, 미소를 짓다, 약을 짓다 등 많은 뜻이 있지만, 과거형은 ‘졌다’가 아닌 ‘지었다’로 써야 합니다. ‘신세나 은혜를 입다’는 뜻의 동사 ‘지다’는 규칙 용언이어서 신세를 ‘지어(져)/지고/지었다(졌다)’처럼 활용할 수 있지만, 어간이 바뀌는 ㅅ불규칙 용언인 ‘짓다’는 죽을죄를 ‘지어/짓고/지었다’로 활용해야 합니다. 이때의 ‘지어/지었다’는 ‘져/졌다’로 줄여 쓸 수 없습니다. 집을 졌다, 시를 졌다 등으로 활용하지 않는 이유지요.

동사, 형용사 등 용언에도 규칙 용언과 불규칙 용언이 있는 것처럼 사람 사는 세상에도 규칙과 변칙·반칙이 공존합니다. 항상 정석대로 사는 사람들만 모여 산다면 금세 지루함과 답답함에 압도되겠지요. 또한, 변칙·반칙을 즐기는 사람들만 있다면 지루하진 않겠지만, 무질서로 혼란스러울 겁니다. 미국에서 막말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만 봐도 세상은 분석가나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돌아가진 않는다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규칙과 불규칙의 공존은 말글의 영역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에도 적용돼, 나와 아주 많이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우러져 살아가라고 깨우쳐 주는 듯합니다.

김정희 교열팀장 kjh21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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