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논설위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2006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협상을 공식화한 것을 시발로 보면 어느새 10년 연륜이다. 당시 노 대통령이 “한국경제의 마지막 승부수이며 도약의 계기”라며 “정치적 부담은 크지만 이건 하고 가자”고 드라이브를 건 것은 파격이었다. 지지층의 반발이 빤히 보이는 의제였기 때문이다. 적잖은 난관을 거쳐 결국 2007년 4월 타결을 이끌어낸 것도 노 정부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애초 경제 사안이었던 한·미 FTA는 이후 갈등과 배신, 폭력이 난무하는 정치·이념 이슈로 변질된다.

순항하는 듯했던 한·미 FTA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얽히면서 난기류에 휩쓸렸다. 불똥은 ‘설거지’를 맡은 이명박정부에 떨어졌다. 2008년 도심을 가득 메운 광우병 촛불시위대는 ‘한·미 FTA 반대’를 외쳤다. 주눅이 든 이 정부는 미국과 추가협상에 이어 재협상까지 하기에 이른다. 곡절 많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은 2011년 11월 한나라당 단독 표결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12년 3월 15일 발효됐다. 이 과정을 거치는 사이 국회에선 해머와 전기톱, 최루탄이 등장했다.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주역도 따지고 보면 한·미 FTA다.

한·미 FTA의 정치성은 ‘노무현 사람들’의 변신에서 절정을 이룬다.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야권 통합이 급물살을 타면서 ‘사상 전향’이 줄을 이었다. 노 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지낸 정동영·천정배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이 반(反)FTA의 선봉에 섰다. 노 정부 국무총리 시절 한·미 FTA를 한껏 치켜세웠던 한명숙 당 대표는 ‘한·미 FTA 폐기’로 180도 말을 바꿨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답게 FTA를 옹호했지만, 끝내 농민단체를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통합 티켓을 위해 과거 보스와 절연한 것이다. 한·미 FTA 타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선후보도 선거 막바지 “그놈의 한·미 FTA”라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마치 나라가 끝장날 것처럼 목소리 높이던 민주당은 이제 잠잠하다. 한·미 FTA로 한국이 거둔 과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재앙’이라고 표현한 데서 역설적으로 확인된다. 정치적 색깔은 판이하나 ‘한·미 FTA 전면개정’을 들고나온 트럼프에 대해 민주당 생각이 복잡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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