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1726년)를 통해 당시 유럽의 정치·외교와 인간세상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1부 소인국(릴리퍼트), 2부 거인국(브로딩낵)은 가치의 상대성을 무시한 채 사소한 일로 권력투쟁을 일삼은 정치권이 비판 대상이다. 3부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라퓨타)에서는 인간의 허황된 괴짜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특히 4부 말(馬)의 나라(휴이넘)는 보다 흥미롭다. 말(馬)의 형상으로 말(言)을 하는 이성적인 휴이넘, 이들의 지배를 받는 추악한 야만족 야후(인터넷 사이트 ‘야후’는 이곳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가 등장한다. 말은 자연과 순리에 따르는 존재다. 야후는 탐욕으로 똘똘 뭉쳐 있다. 노란 금덩어리를 놓고 싸움을 일삼는다. 인간을 빗댄 존재다.
21세기 대한민국. 거인국·소인국의 양태는 다를 바 없이 되풀이된다. 국가 존립 위기에 빠진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싸우기만 할 뿐 대안을 만들어내지 않는 정치권은 똑같다. 휴이넘은 전도된 형태로 대한민국 안에 있었다. 헌법 제1조(민주공화국·국민주권론)를 유린한, 우리도 모르게 건설된 사적인 비밀 왕국이다. 무소불위의 ‘신성 박근혜·최순실 제국’이라고 할 만하다. 철저한 국가의 사유화다. 야후 족의 리더 최순실의 탐욕에 의해 이성(말)은 철저히 농단당했다. 말 그대로의 말은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에 의해 축재의 수단으로 악용됐다. 사이비 신성 제국에서는 헌법도, 법률도, 국가시스템도 묵살됐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줄 알았던 청와대 수석과 장차관은 신성 제국의 탐욕을 채워주기 위해 전방위로 뛰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경제계와 국민이 아닌 신성제국 멤버만을 위해 갈취당했다. 이원종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순실의 존재조차 몰랐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 정호성 전 부속·이재만 전 총무·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등. 의혹에서 자유로운 참모는 찾기 힘들 정도다.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 전 2차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물론이고 기라성 같은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엮여 있다. 신성 박근혜·최순실 제국에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공복은 없었다.
역대 정권마다 국민을 분노케 하면서 끊이지 않고 이어졌던 각종 권력형 비리, 게이트는 명함조차 못 내밀 정도다. 소수의 일탈 세력이 뒷거래를 통해 사리사욕을 채웠다 해도 이처럼 국가권력을 통째로 사유화해 비리 왕국을 이룬 경우는 처음이다. 대한민국이 아닌 신성제국을 위한 인사 의혹은 청와대·기획재정부·문체부·보건복지부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들이 뭐길래 대한민국의 정계·경제계·문화계·체육계를 온통 뒤흔들고 있는가. 자고 일어나면 전해지는 창조적인 비리의 연속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최순실이 박 대통령에게 기생해 권력을 행사한 건지, 누가 몸통이고 꼭두각시인지 헷갈릴 정도다. 희대의 이성 농단, 국가 농단 사태다. 14일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이 검찰에 소환됐다.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목전에 두고 있다. 국치다. 현직 대통령 조사는 역사상 처음이다. 걸리버는 고향에 돌아온 후 극도의 인간 혐오증으로 고통받았다. 신성 제국의 야후 족 혐오증에 걸린 국민을 배려한다면 박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jup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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