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TPP 폐기 ‘발등의불’
트럼프와 회동해도 미지수
안보법제 등 타격, 입지 약화
트럼프 북핵정책 냉온탕 오가
韓·中긴장관계 증폭시킬 우려
WSJ “유럽만큼 변화 안클 것”
외교적으로 미국의 ‘신(新) 고립주의’를 주장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강조돼 온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지역 정책인 ‘피벗 투 아시아’(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전면재조정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트럼프의 아·태 지역 전략 수정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고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의 대외 전략에도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오던 한·미·일 공조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한국과 일본은 트럼프의 대외·안보 정책에 주목하고 있다. 아시아 동맹국들은 트럼프가 대선 기간 중 내놓은 아·태 지역 관련 발언이 ‘선거용’에 불과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13일 미국과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트럼프의 이번 미 대선 당선으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일본이다. 아베 총리는 외교적 관례까지 무시한 채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도 하기 전에 당선자 신분인 트럼프를 미국 정상으로 예우해 오는 17일 긴급 회동을 제안했다. 경제·안보적 측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 트럼프가 폐지를 주장해 왔기 때문에 TPP를 아베노믹스(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의 재도약 발판으로 삼으려던 아베 정권의 앞날이 트럼프의 입장 번복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트럼프 당선을 계기로 중국이 TPP에 맞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추진에 속도를 높일 것이란 전망도 있어 아베 정권의 조바심은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경우 일본의 야당은 “TPP 심의의 전제 조건이 사라졌다”며 중의원을 강행처리로 통과한 TPP 비준안을 참의원에서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수정은 일본의 안보 정책에도 타격이 된다. 아베 정권은 국내 반발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미국과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을 담은 안보법제를 국회에서 강행처리 했다. 아베 정권의 이런 전략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 중국 등 다른 강대국의 아·태 지역 영향력 강화를 견제한다는 대전제 속에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아·태 지역에서 발을 뺀다는 것은 미국을 등에 업고 아시아의 맹주 역할을 하려던 일본의 입지를 크게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게다가 트럼프가 주장해 온대로 주일미군 철수를 운운하며 일본의 미군 주둔비 분담 확대를 요구할 경우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미국과의 동맹을 전제로 구축된 일본의 안보 전략은 근간부터 뒤흔들릴 수도 있다.
한국도 트럼프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주장으로 인해 경제적 타격이 우려된다. 또 트럼프의 행보에 따라 안보 전략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며 특히 북핵·미사일 문제 등에 있어서는 일본 이상으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지난 9월 미 대선 1차 TV 토론에서 “지구온난화가 아닌 핵무기가 전 세계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중국이 북한의 핵 위협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대선 기간 중 트럼프 캠프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은 강경·유화책의 양극단에 서 있는 셈이다. 양쪽 모두 한국에는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문제는 중국이 해결해야 한다’며 중국에 ‘팔밀이’를 할 경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이미 중국과 갈등을 빚은 한국 정부로서는 부담이 된다. 또 북한 핵미사일의 미 본토 타격 위협을 이유로 미군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경우 한반도는 전운에 휩싸이게 된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일 ‘트럼프의 아시아 비전’이라는 논평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가장 급격한 변화가 예고된 국가로 한국과 일본을 꼽았다. 그러나 “동북아 상황은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서 더 거센 ‘무임승차론’이 불거질 수 있는 유럽과는 매우 다르다”며 트럼프의 집권으로 인한 변화가 당초 우려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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