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 이슬 맺힌 백일홍’으로 시작하는 대중가요 ‘선창’. 2001년 8월 1일 여든한 살로 타계한 가수 고운봉의 대표곡이다. 이 ‘선창’의 노랫말처럼 우리말 동사 어간에 ‘-려고’가 붙으면 어떤 행동을 하려는 강한 의도나 욕망을 나타낸다. 흔한 말로 “내, 출세 한번 해 보려고 서울 올라왔다”처럼 성취욕이나 치부욕 또는 권력욕을 드러낼 때에도 쓰인다.
그런데 ‘-려고’ 뒤에 ‘고시 공부를 했던가’처럼 과거 회상 시제를 붙이면 과거사가 후회막급한 일로 바뀐다. 요즘 이른바 SNS를 타고 번지고 있는 일련의 ‘이러려고…’도 그런 예에 속한다.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두 번째 사과를 하면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고 자괴감을 토로한 바로 그 말이다. 세태는 유행어를 낳고, 민초들은 곧잘 이를 제 입맛에 맞는 말로 패러디하곤 한다. ‘이러려고’를 앞세운 패러디는 ‘세금 냈나’ ‘음악 했나’ ‘대학 갔던가’에서부터 ‘학자 됐나’ ‘이 나라에 태어났나’ 등 끝이 없다. 가위 ‘이러려고’ 신드롬이다.
국정을 농락(籠絡)한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들이 수사를 받고 있다. 농락이란, 한자 그대로 새장과 고삐라는 뜻이다. 남을 교묘한 꾀로 휘어잡아서 제 마음대로 놀리거나 이용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네들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농단(壟斷)까지 저질렀다. 농단은 ‘맹자’의 공손추(公孫丑) 편에 나온다. 어떤 사람이 시장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가 물물거래 상황을 파악하고는 흔한 물건을 사재기했다가 비싼 곳에 가서 되팔아 이익을 독점했다는 데서 나왔다. 국정을 농단해 이권을 독차지했거나 그렇게 하려 한 이번 게이트와 닮았다. 비슷한 말 같지만, 비웃거나 깔보면서 놀리는 조롱(嘲弄)과는 한자부터 다르다. 또, 말이나 행동으로 실없이 놀리거나,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놀거나, 서로 즐기며 놀리거나 노는 희롱(戱弄)과도 구별된다.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취임 초기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 노랫소리 들었다는 대통령도 있고, 이러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고 한 대통령도 있었다. 국민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눈물을 닦아줘야 할 국가 지도자들의 언행을 새삼 떠올려 보는 국민은 지금 내 탓이라며 가슴을 치고 있다. ‘이러라고 대통령 만들어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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