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느 자리에서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11·12 광화문 100만 촛불집회’ 이후 국면(局面)이 어떻게 전개될 것 같으냐는 것이다. 점쟁이가 아닌 이상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시민혁명’에 준하는 이날 집회는 한국 현대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임은 분명하다. 미국의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가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시위·비폭력 시위 원칙을 전제로 국가 전체 인구의 3.5%가 집회·시위를 지속한다면, 결국 정권은 이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고 한 학설에 비춰 보면 5000만 명의 3.5%인 175만 명이 비폭력 시위를 계속한다면 박근혜 대통령도 결국 버티지 못한다는 추론이다. 자발적 시민에 의해 이뤄진 이날의 힘이 이제 어떤 방향으로 모이고 변혁의 동력이 되느냐는 결국 정치권이 떠맡을 수밖에 없다. 세계 혁명의 역사를 보면 민중 봉기·혁명 뒤에는 항상 반혁명→반동이 따라오듯이, 인적·제도적 개혁을 하지 않고 100만 촛불집회의 감동에 젖어 흥분해 있을 때가 아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은 6·29 민주화 선언으로 이어지면서 제도적 민주주의 틀을 만들었다. ‘87년 헌법체제’가 지금까지 30여 년간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근간이 된 것은 거리의 열기를 개헌이라는 성과물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당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등 8개 항으로 구성된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긴 했지만 사실 이 계획의 총연출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시위 열기가 한창일 때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회동한 전 전 대통령은 민주화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고 보고 개헌에 소극적이었던 노 후보를 설득, 6·29 선언을 발표하게 만들었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이 노 후보를 설득한 논리는 “김대중이 출마하면 야당은 반드시 2명이나 3명이 출마한다. 1대 다야(多野)로 붙으면 해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사면복권’ 조항에 숨의 의도였다. 결국 전 전 대통령의 계산대로 6·29 선언 이후 야권은 분열됐고 승리는 노 후보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군사정권을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했지만 87년 체제가 민주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광화문 촛불 집회 후 야당의 행태를 보면 벌써 6·29 이후 야당의 분열을 보는 듯하다. 그래도 당시 야당은 ‘호헌철폐·직선제 개헌’이라는 단일한 구호 아래 뭉쳤고 항복선언을 받고 분열했지만, 지금 야당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모양새다. 야 3당이 공조하기로 합의해 놓고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4일 몰래 청와대에 양자회담을 타진해 성사됐지만 결국 당내 반발 때문에 14시간 만에 취소됐다. 제1야당 대표로서 박 대통령과 만나 뭔가 ‘한 건’ 하고 싶은 영웅 심리가 발동한 듯하다. 추 대표의 정치역정을 보면 이런 돌출행동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을 대표로 만들어준 문재인 전 대표와도 교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문 전 대표로선 ‘이대로 쭉’ 가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조건 없는 퇴진’을 강조하긴 했지만, 추 대표와의 관련성을 차단하는 성격이 짙다. 박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 적당히 연명만 해 준다면 내년 대선은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청와대도 탄핵이나 하야 대신 2선으로 다소 후퇴하더라도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만 있다면 문 전 대표 측에 손을 내밀 것이다.
하야, 탄핵, 질서 있는 퇴진 등 방법은 여러 가지 거론되지만 박 대통령이 2018년 2월 정상적으로 퇴임하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 퇴진을 단순한 정권 이양의 이벤트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가 대개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최순실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및 박 대통령의 거취에 대한 결정과는 별개로 정치권은 민의의 성과물이 될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4·19혁명 이후 내각제 개헌, 6·10 항쟁 이후 직선제 개헌을 했듯이 이번 11·12 촛불 민심을 국가 발전의 계기로 삼으려면 개헌을 통해 제도적 완결을 지어야 한다.
박 대통령도 역사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더 이상 정치발전의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 어떻게 해서든 권력을 연장해 보겠다는 정치공학은 완전히 포기하고 진실의 문 앞에 서야 한다. 훗날 역사가들이 11·12 촛불 민심이 대한민국 발전과 민주주의의 틀을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