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상실감’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온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흐름에서 양극화에 의해 소외되고, 8년간 버락 오바마의 행정부 대도시 중심 엘리트주의에 외면당한 이들의 상실감이었다. 특히 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 ‘러스트벨트’의 백인 중산층은 이 같은 상실감을 분노로 표출하며 경선 과정에서부터 트럼프에게 열광했고, 이웃들을 투표장으로 몰고 나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아웃사이더’에게 몰표를 던졌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단지 워싱턴 기득권을 부숴버릴 수 있는 지도자였다.
상실감이 만들어낸 ‘대통령 트럼프’는 또 다른 상실감을 낳았다. 여성 비하, 성추행 논란, 전사자 가족 비하 등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대통령을 마주한 이들은 충격적인 결과에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당선을 기대했던 47.8%의 미국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9일 아침을 맞았다. 이들의 상실감은 대선이 끝난 뒤 1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트럼프 반대’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폭풍을 맞은 미국 정치권은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며 위로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은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상원의원 등 ‘진보의 기수’를 중심으로 상실에 빠진 서민들을 달래기 위한 새로운 당을 만들기에 나섰다.
태평양 건너에 만연한 상실감 못지않게 우리나라에서도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으로 상실감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이들의 얼굴에서는 미국민들의 상실감 그 이상이 보이고, 대통령이 가명(길라임)을 써 피부관리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국민의 입에선 이제 허탈한 웃음만 나오고 있다. 미국의 ‘상실이 낳은 상실감’보다 큰 우리의 ‘순실이 낳은 상실감’은 대통령 퇴진으로만 위로받을 수 있다고 모두 입을 모으지만, 청와대는 버티기에 나서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다. “길라임 씨, 그게 최선입니까.”
김대종 기자 bigpape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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