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법률의 법률이자 전통 관습의 정화이고 사회 변화의 반영이다. 권력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강자의 횡포를 견제하려고 할 때, 헌법은 깊게 읽고 숙고해야 할 지침이다. 사진은 헌법재판소 입구 전경.  자료사진
헌법은 법률의 법률이자 전통 관습의 정화이고 사회 변화의 반영이다. 권력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강자의 횡포를 견제하려고 할 때, 헌법은 깊게 읽고 숙고해야 할 지침이다. 사진은 헌법재판소 입구 전경. 자료사진

지금 다시, 헌법 / 차병직·윤재왕·윤지영 지음 / 로고폴리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난 주말에 서울 시내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의 내용이다. 헌법은 당연한 삶의 문제이지, 거리에서 외쳐서 환기할 이유가 없다. 국민이 거리로 몰려들어 헌법 조문을 구호로 한다면, 그 자체가 국가의 비상한 위기를, 정치와 행정의 중대한 실패를 드러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헌법을 네 번 읽었다. 첫 번째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였다. 그때는 나이가 아직 어렸고 점수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 세세한 뜻을 마음에 새기지는 못했다.

두 번째는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국회에서 새로 마련한 현행 헌법을 승인하는 국민투표를 위해서였다. 독재정권을 타도하려고 피의 값을 무수히 치르고 얻어 낸 헌법인 만큼,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한 구절 한 구절 허튼 마음이 없었다. 5년 단임의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거로 선출한다는 뚜렷한 성취가 헌법에 기록된 것이 기뻤던 기억이 난다.

세 번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때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을 또 다른 선출 권력인 의회가 표결로 제압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전혀 신경 쓴 적이 없었다. 1987년 시민항쟁의 결과가 고작 정쟁의 도구로 쓰인 듯싶어, 컴퓨터 화면에 헌법을 올려두고 찬찬히 읽으면서 나름의 판단을 얻고자 했다.

요즈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문에 국정이 온통 마비되었다. 취임 직후부터 전혀 국민과 소통하지 못했던 대통령이 타락한 비선과 뒷문으로 짬짜미한 끝에 부패를 부추기고, 재벌 총수를 불러들여 독대까지 해서 직접 개입한 정황까지 속속 폭로되었다. 지난 주말에는 분노한 100만 국민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여 ‘하야’를 외쳤다. 국회와 언론에서는 10년 만에 다시 ‘탄핵’이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세상이 혼돈에 빠져 있을 때, 분명히 생각하고 판단하려면 먼저 ‘읽어야’ 한다. 지금 다시, 헌법을 읽을 때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이 책이 나왔다. 이틀에 걸쳐 정독하면서, 네 번째로 헌법을 읽었다. 조문마다 상세한 해설이 붙어 있고, 쟁점과 의견이 덧붙어 있어서, 그동안 주의하지 못했던 헌법의 뜻을 곱씹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헌법을 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저자들은 말한다. “변화를 원한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싸울 수밖에 없다. 정치 현실에서 필요한 싸움은 투쟁뿐 아니라 설득까지 포함한다. 그렇다면 정치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헌법은 일상의 삶에 사용 가능한 싸움의 도구다.”

헌법은 한 국가를 이루는 사람들이 구현한 공동의 가치와 규칙을 정수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농축한 법이다. 법률의 법률임은 물론이고 전통 관습의 정화이자 중대한 사회 변화의 반영이기도 하다. 전문과 부칙이 덧붙은 총 130개 조항은 인간 모두가 갖고 태어난 자명한 권리와 자연한 의무에 대한 합의를 담았기에, 법률가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이 평소에 이를 따로 의식하거나 따져 볼 이유가 없다. 요컨대 헌법은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상황은 때때로 우리에게 헌법을 깊게 읽고 숙고해야 하는 순간을 형성한다. 권력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강자의 횡포를 견제하며 약자의 권리를 증진하려고 할 때, 우리는 헌법을 다시 꼼꼼히 읽고 법정에서, 거리에서 조문을 외치면서 호소한다.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말처럼, 읽기를 통해서 법을 먼저 확인해 수립하고, 권력의 문 앞에서 고함쳐 충분히 호소한 다음, 그래도 통하지 않을 때 피를 동반하는 혁명이 벼락처럼 닥쳐온다. 그렇다. 헌법은 오로지 싸우기 위해 읽는 것이다. 더 이상 부당한 현실을 참지 못하고 정명(正名)을 무기 삼아 세상을 바꾸고 싶을 때 읽는 것이다.

헌법을 다시 읽어야 하는 지금 상황은 국민에게서 위임된 권력을 믿고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특수계급”(제11조 2항)의 행세를 방자하게 행한 자들을 방치하고 도리어 북돋운 대통령의 행태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이 책에서 대통령의 탄핵을 다룬 제65조, 권한대행을 다룬 제71조, 형사상 특권을 다룬 제84조와 그 해설을 꼼꼼히 읽었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의 파면을 요청할 정도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법 위반’이란, (중략)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행위 외에도, 예컨대, 뇌물수수, 부정부패, 국가의 이익을 명백히 행하는 행위가 그 전형적인 예라 할 것이다.”

정확한 법리는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사태를 판단하는 데 이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헌법 제1조 2항의 해설은 “예외적으로 국민이 주권을 직접 행사하는 경우 이외에는 국민의 의사에 따라 통치권의 담당자가 정해짐으로써”라고 되어 있다. 나한테는 이 말이 국가 권력의 행사가 국민 의사에 반할 때에는 “예외적으로 국민이 주권을 직접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자꾸 들렸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책이 나와 준 것이 반갑다.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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