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돌아가는 꼴이 3류 소설보다 못한 기막힌 상황이다 보니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꽉 찬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현직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이 돼버린 것은 하야니, 탄핵이니 하는 헌정 중단 논란의 수준을 넘는 해악(害惡)이다. 믿는 도끼에 찍힌 발등이야 시간이 약이다. 하지만 피의자로 전락한 대통령의 신분 때문에 당장 내년부터는 물론, 길게는 향후 10∼20년까지도 영향을 미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와의 정책 조율을 할 수도 없고, 하지도 못한다면 그게 진짜 위기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설마’하던 정부 판단 착오를 탓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군지 몰라 ‘대우 트럼프 월드’ 사업을 벌였던 관계자들에게 자문한 졸속이나, 트럼프 태스크포스를 만들고도 흐지부지했던 경솔함, 뉴욕 대학의 헬무트 노스(정치학) 교수가 104년 대선 역사를 분석해 당선 확률을 최고 99%까지 예측했던 것을 뭉갠 무감각까지도 그냥 넘어가자.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 측에서 조태용 청와대 국가안보실 차장이 들은 “정상 간 대화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반응은 일방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처지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더라도 정치적·법률적 이유 때문에 불발된다면 재앙이다. 취임도 하지 않은 트럼프를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달려가 만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더구나 조 차장은 트럼프 측이 “독특한 정책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만큼 예측불능이며 기존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한·미 동맹을 필수적인 동맹(vital alliance)이라고 표현한 것도 새 대북 정책에 대한 한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중국에 대한 견제를 깔고 있는 듯 보인다. 예상했던 대로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식 외교 전략은 ‘미치광이(madman theory) 전략’에 닿아 있다. 1950년대 이스라엘에서 고안된 이 전략은 미국이 자국이익에 치명적인 공격을 당하면 갑작스럽게 변하며, 반드시 보복하며 핵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너무 강해서 쓸 필요가 없는 정도의 강한 군대’가 모든 트럼프 대외정책의 출발점이다. 군사력과 경제를 연계해 힘의 외교를 펼쳐 “협조하면 보상하고 그러지 않는 나라는 처벌한다”는 것이다. 전술은 더 구체적이다. “절대 패를 보여주지 않고, 예측 가능한 패턴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흔들며, 기습으로 승리한다. 합의가 간절한 쪽이 더 적게 얻기 마련이다.” 그 대상이 동맹국이 아니길 기대하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자유·인권·민주주의·공동 번영 등과 같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는 찾기 힘들다.
이런 힘의 외교가 성공할지 미지수다. 이번 미 대선은 또 200여 년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새 이정표도 세웠다.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의 첫 대결에서 자본 권력이 승리했다는 의미도 갖기 때문이다. 이는 기득권 정치세력과의 충돌을 예고한다. 트럼프 당선자는 기존 정치인과 의회를 적(敵)으로 꼽았으며, 경제 분야 요직에는 재계 최상위 부자 그룹, 외교·안보 요직에는 공화당 내 강경파를 앉히기 시작했다. 공화 - 민주당의 정권교체 사이클이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라는 갈등 구조로 바뀌었다. 외교는 물론 국내 정치까지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는 당장의 손해가 나중에 이익이 되기도 하고 또는 그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힘의 논리만 있으면 그것은 전쟁이다. 기업에서 최고의 미덕은 합리성·효율성이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만든다. 기업 최고 책임자의 지시와 명령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정치·외교는 지시가 절대적일 수 없으며 명분이나 가치가 그 기반이다. 게젤샤프트에 가깝다. 트럼프의 경착륙이 우려되는 것은 이처럼 최고의 사업가가 최고의 대통령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히틀러나 레닌 같은 선동정치가들은 집권 후 혼란을 폭압이나 또 다른 문제로 막아 왔다. 우선순위로 등장한 북한과 핵 문제 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한 중국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이 동북아에서 고립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예측 불가능하고 독특한’ 트럼프 외교 정책의 연착륙은 ‘한국이 미국과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는 최고의 파트너였고, 파트너이며, 파트너일 것이란 점을 각인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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