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을 앞세워 거대한 이권 놀이를 벌였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문화계 전체가 휘청거리는 가운데 도서정가제가 시행 2주년을 맞았다. 2014년 11월 21일 시행된 도서정가제는 모든 책의 할인율을 정가의 15% 이내로 제한함으로써 출판·서점계를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에서 구했다. 그 전에는 출간된 지 18개월이 지난 구간 도서는 정가제 대상에서 제외돼 반값 할인은 물론 정가의 90%를 넘나드는 광폭 할인까지 횡행해 출판계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다.
2년간 도서정가제의 성과는 서점 쪽에서 먼저 나오고 있다.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과의 할인 경쟁에 밀려 고사 직전까지 갔던 동네 작은 서점들이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전문 서점과 맥주 마시는 서점, 북스테이 서점 등 ‘취향 저격’의 서점들이 등장해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전국에 200여 개의 작은 서점이 생겼다고 하니 제도가 어떻게 현실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신간의 선전도 눈에 띈다. 도서정가제 이전에는 가격이 싼 구간들이 책 시장을 끌고 갔다면, 요즘 베스트셀러 목록은 신간 중심으로 재편됐다. 새로운 책이 치고 빠지면서 그만큼 활력이 생겼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책값 거품을 제거해 독자들에게 책값 인하 효과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신간의 평균 가격은 2014년 1만5631원에서 2015년 1만4929원으로 하락하다가 올 상반기 1만7356원으로 다시 상승했다. 이는 도서정가제 효과를 웃도는 출판 불황의 결과이다. 도서정가제로 책값 거품은 다소 제거됐지만, 초판본 인쇄 부수가 감소하면서 제작 단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출판계에서는 오랫동안 초판 평균 발행 부수가 3000부 안팎이었지만 최근 들어 1000부, 책에 따라서는 500부까지 내려간 상태이다. 책 시장을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경쟁’ 구조로 바꾸겠다는 가장 근본적인 취지도 그 성과가 의심스럽다. 여기에 출판사가 서점에 납품하는 공급 가격 조정 문제, 새로운 할인 방법으로 등장한 중고서점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도서관 도서 구입 문제도 심각하다. 도서관 납품 책 가격도 정가제 적용을 받게 되면서 같은 예산으로 살 수 있는 책 권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서관 도서 구입비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일본 최대 서점 기노쿠니야(紀伊國屋)의 다카이 마사시(高井昌史) 회장은 불황 속에서도 일본의 책과 서점이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 배경으로 ‘도서정가제’를 꼽았다. 일본은 책 할인을 허용하지 않는 완전 도서정가제 국가이다. 다카이 회장은 정가제가 없었다면 서점들이 미국 아마존 등에 밀려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도서정가제를 출판계의 안전망이라고 평했다.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은 우리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재검토하게 돼 있다. 앞으로 1년 후엔 강화할지 완화할지 결정해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빨아들이며 우리 일상까지 마비시키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준비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c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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